서갑수 한국기술투자(KTIC) 회장은 한때 벤처의 희망이자 젊은이들의 영웅이었다. 그가 벤처업계에 등장한 것은1986년 정부 투자기관으로 설립된 국내 최초 벤처캐피털 KTIC의 전문경영인이 된 뒤 부터다.

이 회사는 벤처캐피털로는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했고 외자도 유치해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1995년 KTIC가 민영화되자 서 회장은 지분 10%가량을 매입해 인수했다. 최초의 벤처캐피털을 사들인 경영인.그는 20세기 막판에 불어닥친 벤처 붐을 타고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벤처 버블이 꺼지면서 상황이 힘들어졌다. KTIC와 계열사인 투자자문사 KTIC글로벌의 경영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아들인 서일우씨(당시 KTIC글로벌 대표)가 돌파구를 찾기 위해 나섰다. 2008년 증권회사 설립을 추진했다. 이 결정은 이후 KTIC 그룹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후 상황은 검찰이 23일 발표한 'KTIC에 대한 수사 결과'를 보면 잘 나타난다. 검찰이 관련자들을 기소해 법원 판결이 남아 있지만 수사 결과 자체로만 보면 기업을 살리기 위한 서 회장과 서 전 대표의 몸부림을 읽을 수 있다.

검찰에 따르면 서 전 대표는 자금조달을 위해 유상증자를 추진하면서 유상증자 발행가액을 높여 보다 많은 자금을 조달하려 했다. 주가를 조작한 혐의가 발견된 대목이다. 그는 지인으로부터 해외에 펀드를 설립한 한국인 사채업자를 소개받았다. 한때 여의도에서 회자된 큰손 '검은머리 외국인'이었다.

서 전 대표는 원금 보장을 약정하고 현금 등을 담보로 제공해 해외 펀드가 KTIC글로벌의 주식 350억원어치를 매입토록 했다. 그는 또 '작전세력'과 직원 등을 동원해 73개 차명계좌로 고가 매수,통정매매 등을 통해 KTIC글로벌 주식을 시세조종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서 전 대표는 주가조작 자금과 자신의 개인 대출금 변제 등을 위해 313억원을,서 회장도 308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 전 대표는 주가조작 세력의 원금을 보장해 주기 위해 한국기술투자가 542억원의 보증채무를 부담케 하는 등 600억여원도 배임했다. 주가조작을 통해서는 35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차입매수(LBO) 방식 인수 · 합병(M&A)을 빙자한 횡령도 있었다. 지난해 5월 사채자금 100억원을 빌려 S상선을 300억원에 인수하면서 시가 110억원 상당인 S상선 보유 주식 1950만주를 사채업자에게 담보로 제공하고 S상선과 계열사 자금 170억원을 인수 잔금과 사채자금 변제 등에 사용해 횡령했다. 서씨 부자가 횡령한 액수는 서 회장의 308억원 등 807억원에 달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유상범)는 23일 서 회장과 아들인 서일우 전 KTIC홀딩스 대표 등 17명을 주가조작과 횡령 · 배임 등 혐의로 입건하고 이 가운데 서 전 대표 등 2명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건전한 벤처기업 육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창업투자회사가 모럴해저드에 빠져 주가조작을 하고 계열사 자금을 개인 금고처럼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술투자는 지난 18일 임시주주총회에서 경영권이 서 회장 등 경영진에서 일본계 투자회사인 SBI코리아홀딩스로 넘어갔다. 우호적 투자자로 출발한 SBI 측은 지난해 말 KTIC의 투자 실패 등에 따른 서 회장 일가의 책임을 물어 적대적 M&A를 선언,경영권 분쟁이 불거지기도 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