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 미국의 주요 지표들이 경기상황에 대해 상반된 신호를 보내면서 ‘더블딥’(이중침체)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월가의 이코노미스트들뿐 아니라 미 행정부의 참모 역할을 하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들 사이에서조차 경기전망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이러한 의견차는 결국 미국의 금리인상,즉 글로벌 출구전략이 단행되는 시점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어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24일 홍콩에서 열리고 있는 크레디트스위스(CS)증권의 ‘아시아투자컨퍼런스’(AIC)에 연사로 참석한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와 노라 타이슨 UC버클리대 교수에게 미국 경기회복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올해가 가기 전에 더블딥 올 수 있다”

‘글로벌 경제:세계 경제가 성장궤도로 복귀할수 있는가’를 주제로 강연에 나선 마틴 펠드스타인 교수는 “좋은 소식을 먼저 전하자면 글로벌 금융위기는 끝났다”고 말문을 연 뒤 “하지만 여전히 리스크 요인들이 산적해 있어 안심하긴 이르다”고 말했다.

그는 “신용 스프레드가 하락하고 주요 기업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지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보여준 경기 회복세는 일상적인 경기사이클을 벗어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과거에는 인플레이션을 잡고 성장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올리면서 경기침체를 초래했지만,이번 위기는 근본적인 원인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사실상 금리를 내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지만 긴축 정책이 예상외의 효과를 이끌어냈다는 의미다.

그는 결국 일시적인 경기 부양책이 회복을 견인하기는 했지만 추가적으로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지원책이 없다면 결국 미국 경제는 상승 동력을 잃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지난해 3분기부터 기업들의 가동률과 GDP 성장률이 우상향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앞으로 남아있는 리스크 요인들을 해소하지 못하면 추세는 다시 꺾일수 있다는 진단이다.

펠드스타인 교수는 미국의 경기와 금융시장이 회복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변수로 소비둔화 가능성과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크레딧 이슈, 그리고 자신감의 결여를 꼽았다.

우선 그는 “미국의 소비심리는 금융위기로 10조달러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자산이 붕괴되는 과정을 거치며 극도로 위축돼 있고 가계 부문에서는 실업증가에 따른 가처분소득의 감소에 더해 소비보다는 저축을 늘리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크레딧(신용) 이슈 역시 표면적으로는 해소된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 경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중소기업들이 아직도 은행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은행들은 국채 등 안전자산 투자에만 열을 올릴 뿐 시중에 자금을 푸는데 인색하다는 설명이다.지방 중소은행들의 자산건전성이 아직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할 부분으로 꼽았다.

그는 “상대적으로 빠른 경기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여전히 재정적자와 세부담에 허덕이며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쌓지 못하고 있다”면서 “민간 경제가 자생적으로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기르지 못한다면 결국 올해가 가기전에 더블딥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 동안 반등폭이 가장 두드러졌던 기업들의 공장 가동률과 생산성이 올 1분기들어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주거용 주택과 부동산 판매량도 최근 몇주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더블딥의 조짐들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편 그는 최근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는 그리스의 재정위기와 관련해 포르투갈 등 일부 국가들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전세계로 확산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내다봤다.

◆“지속가능한 성장은 이미 시작됐다”

작년 하반기까지만 해도 추가적인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로라 타이슨 교수는 “몇달 전까지는 더블딥의 가능성에 일정 부분 동의했지만 지금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제가 이미 바닥을 벗어나 지속가능한 성장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물론 일시적인 경기 부양책이 가지는 성장의 한계 등은 고려할 필요가 있지만 미국 경제가 더블딥을 우려할만큼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 역시 지나친 낙관론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시각을 나타냈다.타이슨 교수는 “미국의 경기 전망 대부분이 부동산 시장의 회복에만 주목하고 있다”면서 자산가격의 회복이 전반적인 실물경기의 회복세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특히 그는 “모건스탠리 등 일부 민간 전문가들이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3% 이상으로 점치며 조기 금리인상을 예상하고 있지만 정부의 전망치는 여전히 2.5%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금리를 결정하는데 중요 배경이 되는 경제 전망들이 지나치게 장미빛을 띄고 있는 것은 시장에 혼란만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난 2003~2004년에도 인플레이션과 싸우며 금리를 낮춰야 하는 시기에 잘못된 전망을 근거로 금리를 올렸다 오히려 경기침체가 심화되는 오류를 범한 경험이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타이슨 교수는 “비관론자들이 미국 경제가 올해 성장의 정체 국면을 거쳐 내년엔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이유는 경기부양을 위해 자금을 쏟아부어야 하는 정부의 재정이 줄어들수 밖에 없다는 점”이라면서 “하지만 민간 소비가 완만하나마 회복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업률이 여전히 높기는 하지만 최근 들어 보합세를 나타내기 시작했고 고용자들의 근로시간 대비 단위임금은 오히려 상승하고 있어 미국의 소비여력은 여전히 양호하다는게 그의 판단이다.고용시장이 드라마틱한 회복은 힘들겠지만 기업들의 이익 증가세를 볼 때 붕괴될 위험은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그는 또 “저축률이 높아지고 있긴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높았던 레버리지가 줄어드는 정상적인 과정이어서 크게 우려할 사항은 아니다”고 판단했다.이어 그는 “규모면에서 아직은 미국이 압도적이긴 하지만 인구비중이 훨씬 높은 중국과 인도 등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에서 줄어드는 민간소비를 어느 정도 상쇄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타이슨 교수는 향후 성장속도가 둔화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여전히 유럽 등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미국 경제는 향후에도 ‘U자형’ 회복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 밖에 그는 일각에서 그리스의 사례를 들어 미국 역시 정부의 부채상환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리스크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의 과도한 우려에 불과한 것”이라며 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했다.또 “지방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성장세와 경기를 부양시키는 정부의 능력은 매우 인상깊다”며 “정치적 이슈 때문에 중국이 위안화 변동제를 당장 수용하기는 힘들겠지만 위안화 절상은 결국 받아들이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대해서는 펠드스타인 교수 역시 “중국이 원자재와 반제품 수입을 통해 거대한 생산공장 역할을 하고 있고 강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위안화 절상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고 동의하며 “미국이 중국의 통화정책에 대한 구두개입을 그만두면 위안화 절상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