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또 다른 고민은 중국의 부상이다. 일본은 경제가 어려운 틈에 중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자신을 밀어내고 사실상 미국 다음의 두 번째 세계 경제대국으로 올라서자 장차 중국경제권에 흡수될지 모른다며 긴장하는 분위기다.

동아시아 국제정치 전문가로 한국 사정에도 밝은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慶應)대 교수는 "일본은 중국이 더 커져 제국이 되는 것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아시아의 일원이 아니라 자신이 곧 아시아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면서 "장차 중국이 대국이 돼 '중국 룰을 따르라'고 나올 경우 일본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우려 때문에 일본 재계와 학계 일각에서는 한국을 비롯 대만 인도 필리핀 등 동남아를 연계해 '대중저지선'을 구축하자는 식의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어 주목된다. 금융권의 한 CEO는 "향후 위안화가 절상되면 중국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일본은 한국 대만 인도 등과 함께 중국에 대항하는 축을 만들든지 아니면 중국과 협력하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에서 아시아국가들이 각자 자신이 강한 산업에 특화해 아시아권 경제벨트를 만들자는 아시아 분업론 · 협업론 같은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여기에는 "제조업은 우리가 강하다"는 일본의 자신감도 깔려 있다.

그러나 중국을 견제하려는 이 같은 구상들은 과거 일본 제국 시절의 대동아공영권 같은 패권주의적 주장을 상기시키는 측면이 있어 적극적으로 이슈를 제기하는 데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일본에서 기존 기업경영 모델은 한계가 있다며 글로벌화 추세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자성론이 제기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고급 기술만을 고집하고 폐쇄적이며 변화를 싫어하는 기업체질과 문화를 개선해야 일본이 구상하는 미래의 아시아경제권에서 힘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미즈호종합연구소 나카지마 아쓰시 전무는 현재 일본 기업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했다. "일본 기업들은 100%의 품질과 100%의 서비스를 지향한다. 90%는 안 된다. 그래서 개인 혼자서는 안 되니 2~3명의 팀으로 일을 하게 한다. 이게 문제다. 개인이 열심히 일해도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노무라증권이 인수한 옛 리먼 브러더스 직원들은 성과급을 의식해 엄청 일한다. 이 점에선 한국이 일본보다 더 합리적이다. "

이지마 히데타네 일한경제협회장(도레이 특별고문)은 "일본은 늙었다. 그래서 젊은 한국이 부럽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시장에서 이기려면 기업가 정신이 있어야 하는데 일본 기업들은 국내 시장을 중시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도전정신 부족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일본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술력을 맹신한 결과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헬스케어 전문업체로 지난해 1조2700억엔의 매출을 올린 카오(花王)의 시마다 미나코 사회책임경영 부장은 "상당수의 기업이 기술 발전만 보기 때문에 소비자가 뭘 원하는지 초점을 못 맞추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한국을 배우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 같은 반성에서 출발하지만, 일본의 전략과 관련해 한번 곱씹어볼 여지가 있다. 일본 기업들이 현지 언론인의 표현대로 '공포에 가까운 경외감'으로 한국 기업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 대한 경계심과 동전의 양면인 동시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파트너로 삼으려는 전략적 고려라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미래의 한 · 일 경제관계에 대해 "한국과 일본은 국토 크기와 인구만 조금 다를 뿐 쌍둥이 같은 나라"라며 "비슷한 경제인데 일부러 금을 그을 필요는 없으며 EU처럼 앞으로 두 나라의 시장과 경제가 통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일본이 한국을 미래의 우호적인 파트너로 기대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언급이다.

도쿄=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