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진주시 중앙시장 숙녀복 거리 한 켠에 자리잡은 여성복 매장 에프까스떼(촉석로 202번길 1).가게 주인은 얼마전 목이 더 좋은 곳을 찾아 다른 골목으로 이사했고 이곳에는 점포 임대라는 안내 종이만 덩그라니 남아있다.

새 주인을 찾아 초라하게 남아있는 이 매장은,알고 보면 한 해 매출 125조원을 올리는 LG그룹을 낳게 한 명당자리다. LG 창업주 연암(蓮庵) 구인회 회장은 1931년 이곳에서 포목점으로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1940년에는 액면가 20원짜리 주권을 발행하며 '주식회사 구인상회'를 만들었다. 27일이 창립일인 LG가 근대적 기업 경영체제를 갖춘 지 70주년을 맞은 것.LG그룹이 출범한 때는 락희화학공업사가 설립된 1947년이지만 구인상회를 기점으로 보면 7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시장 작은 포목점에서 출발한 LG그룹은 이제 해외 매출 100조원 달성에 도전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한발 더 나아가 연암이 초석을 놓은 '고객가치 경영'과 '개척자 정신'을 되새겨 100년을 영속하는 '테크놀로지 컴퍼니'로의 진화를 꿈꾸고 있다.

◆연암에서 출발한 고객가치 경영

부산시 진구 연지동 옛 LG화학 공장 터에는 연암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연암이 살던 가옥 위에 돔형 건물을 덧씌워 만들었다. 가택 내부를 그대로 보전해 놓아 당시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그가 개발한 각종 국내 최초 제품도 만나볼 수 있다. 1950~1960년대 연암이 사용하던 나무로 만든 골프채,골프공,티까지 남아 있다.

하지만 연암 기념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물품이 아니라 그가 남긴 말이다. 기념관 곳곳에 걸린 현판의 어록을 보면 LG를 글로벌 컴퍼니로 도약하게 만든 '고객가치경영'이 연암으로부터 비롯됐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남이 미처 안하는 것을 선택하라,국민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것부터 착수하라.(1951년 플라스틱 제품 개발에 나서면서)""얼마 안 남아도 좋으니 봉사한다는 자세로 제품을 팔아라.럭키의 신용이 소비자의 머리 속에 남게 되면 결국 그것이 우리가 버는 것 아니겠느냐.(1960년 럭키치약 가격을 높이자는 내부 의견을 듣고)"….

1931년 당시 25세 청년이던 연암이 포목점을 시작해 빠르게 성공을 거둔 것도 고객의 마음을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 연암은 장삿길에 나서면서 가장 먼저 시장을 살폈다. 유행의 도시,소비의 도시 진주를 돌아다니며 여인들의 화려한 옷차림을 주목했고 첫 사업 아이템으로 비단을 선택했다. 그는 먼저 고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름에 비단옷을 입고 있으면 너무 더워요. 여름용과 겨울용이 따로 있다면 당장 가서 사죠.""무늬가 몇가지 없네요. 다양했으면 좋으련만."…. 연암은 이웃 가게에 물건을 사러온 손님들에게까지 직접 찾아가 다양한 취향을 파악하는 데 골몰했다. 수를 놓거나 염색한 원단,사시사철에 맞는 다양한 두께의 고급 비단 등을 만들어 단숨에 진주의 포목 시장을 거머쥔 배경이다.

◆제품 '발명'의 선구자

연암 기념관 2층에는 1967년 호남정유 여수공장 기공식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하사한 '기술혁신'이란 휘호가 걸려있다. 이렇다할 기술 하나 갖지 못한 산업 여명기에 국민 생활에 꼭 필요한 제품들을 만들어 온 연암의 공로를 치하한 글이다.

연암은 1947년 여성에게 꼭 필요한 국산 화장품을 최초로 개발했고 1952년에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생필품조차 구하기 쉽지 않던 국민생활에 큰 변화의 획을 그은 플라스틱 빗 · 칫솔 등을 내놓았다. 1954년에는 외국산이 장악하던 치약시장에서 한국인의 생활습관에 맞는 치약을 개발해 화학산업을 일으켰고 1958년에는 금성사를 설립, 국내 최초로 라디오 · 전화기 · TV · 세탁기 등을 잇따라 선보였다. 1967년에는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외자를 도입한 합작회사 호남정유를 설립했다. 화학,전자 등 한국 산업 근대화의 초석을 놓은 LG의 발걸음이 연암의 개척정신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연암은 그 후로도 많은 기업들을 설립해 오늘날 LG그룹의 초석을 닦은 뒤 1969년 말 향년 62세로 별세했다.


◆한국 근대화 인재 배출한 지수초교

연암 생가(방산정)가 있는 진주시 지수면에는 이색적인 이력을 가진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1921년 GS그룹을 낳게 한 허씨 가문의 만석꾼 허준이 땅을 기증해 설립된 이 학교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마치 한 나무처럼 붙어 자라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재벌송이라 부르는 이 나무는 연암과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나란히 심고 가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한학을 배우던 중 이 학교로 편입학했고 한 교실에서 앞뒤에 나란히 앉아 공부했다. 대한민국의 산업 근대화를 이끈 두 거물을 산골의 작은 초등학교가 배출한 셈이다.

연암에 이어 LG그룹을 이끌었던 구자경 LG명예회장도 이 학교 출신으로 일제의 징집을 피하기 위해 한 때 이곳에서 교편도 잡았다.

진주 · 부산=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