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빅토리아주의 주도(州都)인 멜버른에서 차를 타고 남동쪽으로 한 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크랜번.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은 알키라고등학교 10학년(한국의 고1에 해당) 교실에서는 중국어 수업이 한창이다. 교사는 아이폰의 지도 검색 기능을 활용해 중국 베이징 지역을 선택한 뒤 스마트보드(전자칠판)에 화면을 띄웠다. 톈안먼 이허위안 등 주요 관광지를 소개하던 교사는 "톈안먼 전머 취(톈안먼 어떻게 갑니까)" 등 여행에 필요한 중국어를 자연스럽게 가르쳤다. 이안 매켄지 교장은 "보충수업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더 배운 학생들은 학교에서 지급한 개인용 태블릿 PC로 본인의 학업 성취도를 점검하고 모자란 부분은 스스로 학습한다"고 설명했다.

◆호주 최초의 PPP 학교


2009년 3월 문을 연 알키라고는 호주 최초로 PPP(Private Public Partnership) 방식으로 세워진 학교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기업들이 돈을 대 설립한 학교를 말한다. PPP는 2007년 12월 빅토리아주 정부가 추진하기 시작했다.

알키라고 설립에 들어간 비용은 모두 280억원.건축회사,금융회사 등으로 이뤄진 컨소시엄이 자본금을 댔다. 주정부는 향후 25년간 이 비용을 기업에 분할 상환한다. 기업이 정부에 학교를 빌려주고 일정 기간 이자(?)를 받는 셈이다. 대신 기업은 이 기간 학교의 재정과 유지관리 등을 책임진다. 알키라고는 후지제록스 호주지사와 호주 현지기업들과도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어 각종 지원을 받고 있는 상태다.

반면 학교의 모든 교육 과정은 교사와 지역 교육부가 책임진다. 돈은 기업이 댔지만 교육은 철저히 공적 기능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빅토리아주 교육유아개발부 폴 바버 부매니저는 "최첨단 교육 시설과 환경을 갖추기 위해 민간자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것"이라며 "기업들의 학교 인프라 투자가 개별 학교의 성과를 향상시켜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높여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빅토리아주 정부는 이에 따라 내년까지 총 18개의 학교를 PPP로 설립할 계획이다.

◆학업성취도 높아

기업과 정부가 힘을 모아 세운 이들 PPP 학교는 정보기술(IT)을 포함한 첨단 시설에 유능한 교사진이 어우러지면서 큰 성과를 내고 있다. 알키라고 등 PPP 방식으로 세워진 학교에 힘입어 빅토리아주는 교육 성취도가 호주 8개 주 가운데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실제 호주의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9학년(한국의 중3에 해당)의 경우 최소 기준 이상의 성적(한국의 보통 이상)을 낸 학생 비율이 쓰기 부문은 1위(90.1%),읽기(94.7%)와 셈하기(95.2%)에서는 각각 2위에 올랐다.

교사진도 풍부하다. 빅토리아주의 교사 1인당 평균 학생은 11.8명에 불과하다. 매켄지 교장은"학생들은 다(多) 대 1,소(少) 대 1,1 대 1 등 다양한 형태의 수업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 경제도 살린다

호주의 PPP 학교는 교육 성취도는 물론 지역경제를 성장시키는 부수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학업성취도가 높다는 소문이 돌면서 학부모들이 속속 이 지역으로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3년 전 1만여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학교가 설립된 지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멜버른이 최근 도시 경계선을 확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것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PPP 학교가 새로 설립될 경우 인구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에 따라 28만4000채의 주택을 새로 공급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알키라가 위치한 크랜번은 물론 멜버른의 서쪽 지역도 개발이 가시화되고 있다.

생활 인프라도 속속 갖춰지고 있다. 주정부는 새롭게 조성되는 도시에 20억달러 를 투입,각종 편의시설 건설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인터넷 환경이 좋지 않았던 마을엔 이미 초고속 인터넷망이 구축됐고,주변 도시를 잇는 도로망과 기차역도 속속 건설되고 있다. 황량하기까지 했던 도시에 쇼핑몰 등이 들어서며 활기를 되찾았고 주변 지역을 선도하는 도시로 변모했다. 바버 부매니저는"기업들도 PPP 학교가 지역 경제에까지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멜버른=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