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와서 놀랐던 점 중 하나가 한국인들은 정말 뭉치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명절이 되면 가족,친척들 간의 모임을 위해 어김없이 고향으로 향한다. 불과 반나절 남짓한 만남의 시간을 위해 길 위에서 보내는 많은 시간의 교통 체증을 기꺼이 감수한다. 연말이 가까워 오면 송년회라는 명목으로 친구들과 이틀 걸러 한 번씩 모임을 가진다.

비단 가족이나 친척,친구들뿐 아니라 일터에서 직원들 간 유대감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인 듯하다. 특히 소주와 삼겹살로 대표되는 한국의 업무 후 회식 문화는 내가 경험한 어떤 지역의,어떤 회사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다. 처음 직원들의 회식에 갔을 때,부서장부터 평사원까지 모든 직원들이 한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같이 고기를 굽고 술잔을 돌리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정겨운 분위기에서 나누는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는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프랑스나 유럽의 직장인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조용히 각자 개인적인 공간으로 흩어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일요일에 직원들과 함께 서울 근교 관악산으로 등산을 갔다. 산 아래에 모여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길을 걷다 보니 기분이 정말 상쾌해졌다. 난 힘들어서 정상까지 밟지는 못했지만,직원들과의 우애가 한결 돈독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는 가족이 아닌 직장 동료들과 함께,그것도 휴일에 모여 산을 오른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렇듯 한국인들에게 직장 즉 일터란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라기보다'제2의 가정'이란 정서가 아주 강하다. 서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최고경영자(CEO)는 임원의 대표 또는 계약에 의해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 그 이상도,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회사와 관련된 것들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한국인들은 CEO에 대해서도 서구인들과는 조금은 다른 생각과 기대를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취임 이래 매년 임원진과 함께 정기적으로 전국 사업장을 직접 방문한다. 현장에서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직원들이 CEO인 나에게 거는 기대와 바라는 것들이 마치 한 가정의 가족 구성원들이 아버지에게 바라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최근 글로벌 경제 무대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기업의 장점으로 신속한 의사 결정 체계,강력한 리더십,끈끈한 조직 문화 등을 이야기한다. 이런 것들이 바로 한국만이 가진 가족적인 기업 문화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는 한국 기업들이 기술력뿐 아니라 기업 문화에 있어서도 전 세계 AXA 동료들에게 자랑할 점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기쁘다. 한국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CEO의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기 마르시아 AXA손해보험 사장 guy.marcillat@ax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