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합사 1㎞ 가격 100만원…40개국 수출 '승승장구'
◆선택과 집중 삼양사의 힘
삼양사가 10여년의 연구 · 개발(R&D) 끝에 국내 최초로 선보인 흡수성 수술용 봉합사(체내에서 저절로 녹는 실)가 세계 40개국 80여개 업체에 수출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선두업체 중 하나인 독일 비브라운을 제치고 제품 출시 12년 만에 세계 3위(시장점유율 8% · 봉합원사 물량 기준)에 올랐다. 제품 매출도 작년 270억원을 기록,판매를 본격화한 2001년(96억원)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성공 비결은 선택과 집중이다. 에티콘(미국) 코비디엔(미국) 비브라운 3개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100%에 달했던 수술용 봉합사를 신(新)사업으로 과감히 '선택'했고,중국과 대만 업체에 밀려 경쟁력이 떨어지던 화섬 사업을 정리하며 고부가가치 섬유인 봉합사 기술개발에 집중한 결과다.
삼양사가 수술용 봉합사 개발에 뛰어든 것은 1987년.에티콘 등 해외 업체들이 1970년대 잇따라 등록한 특허의 만료시기가 다가오던 때였다. 꿰맸던 실을 푸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재감염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흡수성 봉합사 시장이 확대될 것이란 게 회사 측 판단이었다. 1997년 첫 제품을 내놓은 삼양사는 수술용 봉합사 등 산업용 특수 원사에 힘을 쏟기 위해 기존 화섬 사업을 떼내 경쟁사 SK케미칼과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결단을 내렸다.
회사 관계자는 "개발 초 코웃음을 치며 무시하던 해외 선두 업체에까지 원사를 공급할 정도로 기술력과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며 "이젠 매년 신제품을 내놓으며 세계 시장 판도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고 설명했다.
◆기술 장벽 높은 시장
흡수성 수술용 봉합사는 생분해성 화합물인 폴리글리콜산(PGA)을 원료로 만든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체내에 있는 수분과 결합해 이산화탄소와 미세한 물분자로 자연 분해된다.
기술력의 관건은 일정한 강도 유지와 흡수성(녹는 속도) 조절이다. 찢어진 상처 부위가 아물고 치유될 때까지 접합 부위를 지탱할 강도를 지녀야 하는 것은 물론 상처 정도와 인체 장기 종류에 따라 실의 녹는 속도를 1주일에서 최장 6주일까지 맞춰줘야 한다. 이런 기술적 특성 때문에 세계 10개 안팎의 회사만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1㎞ 분량의 가격이 100만원 선으로 범용 폴리에스터 원사에 비해 200배가량 비싸다.
흡수성 수술용 봉합사 시장은 2001년 영국의 광우병 파동으로 전환점을 맞았다. 소와 양의 근육이나 혈관으로 만들던 기존 제품은 광우병 대란으로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일제히 판매가 금지됐다. PGA를 원료로 한 수술용 봉합사가 급성장하게 된 계기였다. 삼양사 제품이 해외 시장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차별화 마케팅 주효
삼양사는 봉합용 원사(原絲)를 생산,해외 완제품 업체에 넘기는 사업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완제품 업체는 공급받은 원사에 수술용 바늘을 붙여 포장한 뒤 병원 등 의료기관에 납품한다. 에티콘 코비디엔 비브라운 등 선발 업체들은 원사 생산과 완제품 제조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후발 완제품 업체들이 2000년대 초까지 선발 업체들을 따라잡지 못했던 것은 까다로운 품질관리 때문이다. 흡수성 봉합사는 공기 중에 있는 수분에 의해서도 분해된다. 포장기술이 없는 후발 업체들은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밀려 났고,그들의 퇴출은 삼양사에 원사 판매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삼양사가 내린 선택은 거래 업체에 대한 포장기술 지원이었다. 판매 초기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을 포장기술 개발에 재투자,거래 업체에 조건없이 전수했다. 수요처와의 윈-윈 전략이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