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경제부가 국가 CTO(최고기술경영자)로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을 내정했다. 황 전사장은 지경부가 지원하는 연구개발사업의 방향과 예산배분 등을 담당할 전략기획단 단장을 맡는다. 정부 부처가 민간출신 경영자를 국가 CTO로 임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란 점에서 앞으로의 변화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황 전 사장의 경우 반도체 발전사에서 '황의 법칙'을 만들어낼 정도로 성공한 CEO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우리는 이번 실험이 국가 연구개발투자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본다. 정부부처마다 연구개발의 성격이 다르지만 지경부는 산업기술 연구개발 투자를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우선 기업의 전략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자기 책임으로 할 수 있는 연구개발은 당연히 기업에 맡겨야 하지만 높은 위험부담 등으로 민간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하는 분야가 있다면 정부가 과감히 나설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 판단은 공무원보다 민간 기업인들이 더 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공무원들이 예전의 권한을 포기하고 새 실험을 하겠다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제도 도입이 전부는 아니다. 실험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는 과연 공무원들이 실제로 권한을 포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경부 연구개발 예산이 4조원을 넘는다지만 저마다 담당하는 곳이 따로 있어 극단적으로는 국가 CTO가 할 역할이 거의 없을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새 CTO가 다룰 예산이 잘해야 수천억원에 불과할 것이란 얘기도 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달라지는게 없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둘째,국가CTO의 성패는 기업 이해관계로부터의 독립 여부에 달렸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연구개발에서 교수 이해관계를 배제해야 하듯이 지경부의 연구개발에서는 기업 이해관계를 차단하는게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부처 차원을 넘어 정부 전체 연구개발을 다룰 CTO가 반드시 필요하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역할을 그 방향으로 재정비하는 노력이 시급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