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섹스& 더 시티] 신입들의 유창한 버터발음에 골드미스는 오늘도 짐을 싼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글로벌 골드미스 되려면…
30대 초반이 MBA 도전 마지노선, 35세 넘기면 잃는게 더 많아
단순한 외국어 습득보다 국제적인 감각 키우는게 중요
입사 7~8년차 이상이면 중동·중국 등 지역전문가에 관심을
30대 초반이 MBA 도전 마지노선, 35세 넘기면 잃는게 더 많아
단순한 외국어 습득보다 국제적인 감각 키우는게 중요
입사 7~8년차 이상이면 중동·중국 등 지역전문가에 관심을
광고회사에서 5년 넘게 일해 온 송현진씨(31)는 다음 달 미국 뉴욕으로 1년 과정의 어학 연수를 떠난다. 최근 외국계 회사와 접촉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영어를 제대로 구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5년간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1년 정도는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송씨는 "주위를 둘러봐도 외국생활을 1년 정도는 경험해 봤다는 '스펙'을 가져야 할 것 같아 연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외국어 등 글로벌 역량에 대한 회사의 요구 수준이 점점 높아지면서 연수나 유학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미혼 여성 직장인들이 외국어에 대해 갖는 부담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젊은 여성 직원들은 왠지 외국어를 잘할 것 같다"는 직장 상사와 남성 동료들의 고정관념이 은근히 압박으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다. 새로 들어오는 신입직원들의 유창한 '버터 발음'을 듣고 있노라면 이대로 있으면 절대 안 되겠다는 위기감마저 생긴다.
실제 온라인 취업정보업체 잡코리아가 지난해 9월 직장인 4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절반에 가까운 45.3%가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2009년 입사면접 경험이 있는 구직자 42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44.2%가 '면접 때 영어 인터뷰를 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영어 인터뷰에 가장 큰 도움이 된 공부방법으로는 '해외 어학연수'가 31.7%로 가장 많았다.
◆'유학 백수' 될 수도
하지만 뚜렷한 목표의식이나 미래에 대한 로드맵 없이 떠난 유학이 나중에 예기치 못한 '불행'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가을 미국 듀크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따고 돌아온 김주영씨(35)는 요즘 서울 청담동에 있는 한 영어 논술학원의 강사로 일하고 있다. 학위를 따고 한국에 돌아올 때만 해도 손쉽게 고액 연봉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지만 의외로 취업문이 좁았다. 유학파들이 넘쳐나면서 서류전형조차 통과하기 힘든 게 현실이었다. 김씨는 "차라리 유학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예전에 일하던 대기업에서 과장이 돼 있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한 자동차 부품업체의 인사과장은 "요즘 기업들은 MBA 학위만으로 사람을 채용하지는 않는다"며 "MBA 학위 소지자를 고용하고 싶을 때는 오히려 정통 유학파들을 따로 모아 특별전형을 실시하고 있다"고 답했다.
예전처럼 유학파를 우대하지도 않는다. 과거 유학파 숫자가 적을 때는 '유학파 대 국내파'의 구도 속에서 해외경험이 있는 사람이 채용 과정에서 월등하게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요즘은 국내파의 외국어 능력도 충분히 뛰어나기 때문에 굳이 해외 유학파에게 좋은 점수를 줄 이유가 없다는 것.비슷한 실력이라면 오히려 연봉협상 때 덜 까다로운 국내파를 선호한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30대 초반 과장급 정도를 MBA를 노려볼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꼽는다. 졸업시점이 35세를 넘기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채용업체의 헤드헌터는 "글로벌 감각을 키우고 싶다면 차라리 외국계 기업의 본사나 국내 기업의 해외 지사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노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근성없어 탈출한다'는 지적도
전체 직원의 70% 이상이 여성인 한 대형 유통업체 사장은 "해가 갈수록 신입 여직원의 비중은 높아지지만 이들의 근속연수는 도저히 늘어날 기미가 안 보인다"고 토로했다. 일을 시킬 만하면 유학 연수 등을 이유로 사표를 던진다는 지적이다. 그는 "회사에서 안식년 개념으로 5년마다 6개월씩 유급 휴직 기간을 주고 있지만 여직원들은 이마저도 적다고 불평한다"며 "남자나 여자나 직장생활이 힘든 것은 마찬가지인데 유독 여직원들이 쉽게 사표를 쓰는 것은 그만큼 근성이 부족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학이나 연수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더라도 문제는 있다. 회사는 전문적인 기술보다 조직적인 팀워크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데,학위가 그런 능력을 키워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 계열사의 인사담당 임원은 "유학을 다녀온 사람의 전문성을 인정해 주는 것은 맞지만 유학 대신 회사에서 궂은 일을 해가며 지속적인 충성심을 보인 사람들도 배려해야 하는 게 맞다"며 "인간적으로는 순수 국내파에게 더 애정이 가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언어와 국제감각은 다른 문제
기획재정부의 대외협력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사무관은 업무의 90% 이상을 영어로 진행한다. 하지만 그는 대외업무에서 외국어 실력이 업무 성과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외국어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그는 업무를 함께 하는 상대방과 공통의 대화주제를 찾는다든지,이메일을 통해서라도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게 글로벌 감각을 익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국내 통신업체의 글로벌전략팀에서 일하는 이경신 과장은 해외 투자회사 관리와 해외 전략적 제휴 파트너 발굴을 맡고 있다. 그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영어만으로는 어렵다"고 말한다. 영어와 국제감각은 다른 문제라는 것.그는 경영학 지식이 필요하다고 느껴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경영연구원과 뉴욕주립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테크노경영석사(MS · TM) 과정을 수료했다. 이진아 브랜드유리더십센터 소장은 "자신이 맡고 있는 분야의 전문용어를 사용해 이메일을 작성할 수 있고,협상에서 사용하는 매뉴얼화된 문장을 숙지하고 있는 정도라면 업무용 영어로는 충분하다"며 "외국어 자체를 목표로 삼기 보다 외국어를 통해 글로벌 감각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틈새지역을 노려라
요즘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많지만,지역 전문가를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한다. 최근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시장으로 진출하는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해당지역의 전문가를 찾는 수요가 늘고 있는 것.하지만 특정 지역의 시장 상황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를 찾기는 매우 힘든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7~8년차 이상의 과장급이라면 외국어 공부에 매진하기보다는 이러한 지역 전문성에 무게를 두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지역 전문가 수요는 앞으로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어서 지금부터 준비하더라도 늦지 않다.
브라질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한 자동차 업체 임원은 "누구든 한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몇 년씩 걸린다"며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를 모두 섭렵하겠다는 무모한 욕심을 버리고 한 지역을 정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