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학에선 환자 진찰에 네 가지 방법을 주로 썼다. 눈으로 보는 망진(望診),귀로 듣는 문진(聞診),증세를 묻는 문진(問診),맥을 짚고 몸을 만져보는 절진(切診)이다. 이 중에 망진을 으뜸으로 쳤다. 중국 전국시대 명의 편작은 환자 겉모습만 보고도 아픈 곳을 콕 집어냈다고 한다. 불문진단(不問診斷),즉 물어보지도 않고 귀신처럼 병을 알아냈다는 얘기다. 이로 미뤄볼 때 편작은 망진의 달인이었던 모양이다.

망진에는 사람 몸이 하나의 유기체여서 몸속 장기의 이상이 몸 밖으로 표출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오랜 기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병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을 유형별로 분류,진단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동양의학 역사가 긴 만큼 망진의 방법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얼굴 혀 머리카락 손발 손톱 척추 가슴 체형 걸음걸이 등을 관찰하는 게 기본이다.

예를 들어 혀의 색으로 질병의 경중,체내 저항력의 강약 등을 파악해 냈다. 흰 설태는 병의 초기나 가벼운 증상을 나타내고,누런 설태는 내장에 열이 축적된 징표다. 약간 검은 설태는 열이 심해 체액이 고갈된 상태인 반면 진한 검은색 설태는 위독함 · 만성 질환의 징후다. 손톱의 모양과 색깔만으로도 다양한 병증을 알아냈다. 손톱이 오목하게 숟가락처럼 변했다면 빈혈 매독 등을 의심할 수 있다. 심장병이나 간경변 환자의 손톱은 둥그스름하게 변형된다. 또 손톱에 흰 반점이 많다면 신장병일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손의 색깔이 검어진 반면 손톱은 유달리 하얀색을 띠고 있어 신장 이상설을 뒷받침한다고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남성욱 소장이 최근 밝혔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만성신부전으로 2주에 한 번씩 신장투석을 한다는 추정이다. 지난 3월7일 함흥 군중대회에서 손뼉을 칠 때 왼손을 그대로 두고 오른손을 움직이는 걸로 봐선 2008년 8월의 뇌졸중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

국가 원수급 인물의 건강상태는 잘 공개되지 않는 게 보통이나 북한은 유독 비밀이 많다. 김 위원장의 건강도 주로 사진이나 TV 화면을 통한 망진으로 판단하게 된다.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니 이런 식으로라도 추정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경제는 어렵고 김 위원장 건강도 좋지 않은 터에 북한은 복잡한 계산 할 것 없이 얼른 대화에 복귀해 툭 터놓고 도움을 청하는 게 어떨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