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의 중심 상업지역인 궈마오에서 서북쪽으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중원부동산 본사.지난 25일 이곳 11층의 부동산상담소에는 창구마다 방문객들이 직원들과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옆엔 10여개의 은행에서 파견한 은행원들이 대출상담을 하고 있었다. 건너편 매매서류 작성 대행소도 바쁘게 돌아가긴 마찬가지였다. 매매 상담부터 계약서 작성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하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지난주부터 부쩍 늘었다. "인플레보다 자산 버블이 더 문제"(판강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라고 하지만 베이징 부동산 시장은 이처럼 후끈 달아오르며 '출구 전략'이라는 핫이슈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양회 끝나자 거래 급증


베이징시 부동산거래 관리망에 나타난 지난 24일 부동산 거래건수는 1254건.한 달 전인 2월24일(579건)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 전국정치협상회의) 폐막식 날인 14일에는 257건에 불과했지만 바로 다음 날인 15일 1142건으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양회 기간 중 강력한 부동산 시장 억제 정책이 나올 것이란 말이 루머에 그치자 거래가 다시 터지고 있다"(옌자부동산 루언쥔 고문)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린다.

가격도 전반적으로 오름세를 타고 있다. 베이징시 자오양공원과 붙어 있는 관후궈지아파트는 지난달 ㎡당 평균 2만6900위안에서 최근 2만7300위안으로 소폭 올랐다. 야윈춘의 천허자위안은 ㎡당 평균 2만1600위안으로 지난달 평균보다 4%,리두수이안은 ㎡당 2만6100위안으로 0.9% 상승했다. 지난 17일 베이징 왕징지역에서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이 하루에 두 번 바뀌면서 인근 아파트 소유자들이 이미 계약을 한 매물을 위약금을 물면서 거둬들이는 해프닝까지 발생했다. 다왕징 1호구역이 ㎡당 2만7529위안,둥성샹의 토지가 ㎡당 3만위안에 팔리며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숨가쁘게 경신하자 가격 상승을 기대한 아파트 보유자들이 거래를 중단해 버린 것.다왕징 1호구역 인근 부동산 중개업체인 중원우예의 리원제 부장은 "최근 계약 취소를 통보하는 주택 보유자들의 전화를 20여통 받았다"며 "건당 2만~3만위안인 계약금의 두 배를 물어주더라도 계약을 깨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은행이 안되면 전당포로

은행들이 부동산 대출을 줄이면서 시장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집을 사려다 은행에서 대출을 거부당했다는 왕치원씨는 "작년만 해도 소득증명서를 대충 만들어서 내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줬는데 올해부터는 세금납부증명서와 월급입금증명서를 제출하라고 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집을 잡고 돈을 빌려주는 전당포가 때아닌 호황이다.

베이징 왕징에 위치한 바오레이 전당포에 들어서자 부동산담보 대출시 필요한 서류를 일목요연하게 적어놓은 큼직한 안내문부터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만난 리우웨이씨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출금이 남아 있어 은행에서 돈 빌리기가 어렵다"며 "수중의 돈에 조금만 더하면 작은 집을 한 채 더 살 수 있을 것 같아 대출상담을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은행이 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최근 전당포 대출이 평균 30%가량 증가했다.

부동산 매입 자격이 없는 외국인들의 편법 매입도 기승이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본래 직업을 가지고 1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이라야 가능하지만 중간 브로커들을 고용한 불법 매매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 9만위안 정도의 수수료가 들어가는 데다 나중에 문제가 생길 여지도 크지만 집값뿐 아니라 위안화 가치가 올라갈 것으로 본 사람들이 집을 구매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높은 임대료가 시장 달궈

정부의 자산 버블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베이징 부동산 가격이 좀처럼 꺾이지 않는 이유는 토지 가격 상승과 임대 수요 증가 때문이다. 남기범 대신부동산컨설팅 대표는 "야윈춘 왕징 등 외국인 밀집 지역은 더 이상 아파트 지을 땅이 없는데도 외국인 임대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게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쑤성 항저우에서 ㎡당 3만2000위안에 분양한 아파트가 월 4000위안에 임대되지만 베이징에서는 같은 가격의 아파트면 최소 월 1만5000위안은 받는다"며 "대출로 집을 사도 임대료에서 이자가 빠지는 한 베이징의 주택 매입 수요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아직은 중국 부동산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대세다. 남 대표는 "다른 외국 도시에 비해 베이징 주택 가격은 저평가돼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중국 정부의 부동산 가격 억제 의지가 분명한 만큼 좀 더 시장을 관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