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즌 필'(신수인수선택권)이 상법에서 정하고 있는 주주의 신주인수권(주주가 신주를 우선 배정받을 수 있는 권리)을 침해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옴에 따라 정부가 입법예고한 포이즌 필 제도 도입안에 대한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자사주 취득 등에 기업 역량이 낭비되는 것을 막아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도입을 추진 중인 포이즌 필에 법원이 브레이크를 건 모양새기 때문이다.

▶ 법원, 기업 포이즌필 도입에 제동

포이즌 필 조항을 담은 서울식품의 정관 변경 안건 상정을 금지시켜달라는 회사 2대주주 성모씨의 가처분 신청을 수원지법이 받아들인 것은 포이즌 필에 대한 사회 일각의 부정적인 인식을 반영한 결과로 주목된다. 가처분을 담당한 김명한 부장판사는 "포이즌 필이 현행 상법에서 정한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하고,도입될 경우 지배구조를 왜곡시켜 회사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안겨줄 우려가 있는 무리한 정관 규정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가 이달 초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로 넘긴 상법 개정안이 암초를 만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가처분 안건과 입법 내용 간 차이가 커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우선 상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포이즌 필 도입이 추진됐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다. 김 부장판사는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 무리한 정관 변경을 법 개정을 계기로 너무 앞서나간 조치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서울식품의 경우 신중해야 할 포이즌 필 도입을 이사회 결의로 할 수 있도록 시도한 점도 무리수라는 지적을 받았다. 김 부장판사는 "열이면 열 모두 제각각인 사안에 대해 이사회가 결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상법 입법예고안에서는 주총 특별결의(3분의 2 찬성)로 도입 요건을 엄격하게 정하고 있다.

오히려 이 같은 찬반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입법이 진행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수현 법무부 상사법무과 검사는 "현행법상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포이즌 필을 도입할 경우 주주 이익 침해로 결론날 수도 있다"며 "그래서 제도 안으로 절차를 끌어들여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주려는 것"이라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이 같은 포이즌 필 찬반 논란의 이면에는 주주평등권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자리잡고 있다. '1주=1표'라는 오랜 통념과 평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사회 분위기가 논란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검사는 "해외에서는 차등의결권도 대부분 허용하고 있다"며 "1주=1표를 지고지순한 권리로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면 주주를 차별할 수 있다는 게 국제적인 인식이며 평등의식이 강한 한국 주주들의 인식이 오히려 예외적"이라고 지적했다.

가처분 결정과 입법안은 별개의 내용이지만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될 경우 법안 통과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국회는 현재 법무부 대법원 형사법학회 경제개혁연대 전경련 등에 의견 조회를 하고 있어,일러야 오는 6월쯤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의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무위원회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반대 의사가 나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법안 통과 후 1년의 유예 기간을 감안하면 2012년은 돼야 시행될 것이란 분석이다.

백광엽/임도원/김유미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