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A씨(65)는 보유 현금만 50억원에 달하는 고액 자산가다. 그는 요즘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문제를 놓고 고민이 많다. 상속세의 최고세율이 50%로 높아 아무래도 미리 증여를 해두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증여 후 10년이 지나면 상속 재산으로 합산 과세하지 않기 때문에 세금을 상당히 절감할 수 있다. A씨는 일단 30억원 정도를 증여하기로 하고 절세를 위해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아 보기로 했다.

◆현금보다는 부동산 증여를

신한은행 WM사업부의 황재규 세무사는 A씨에게 현금보다는 소유하고 있는 상가 등 부동산을 증여할 것을 추천했다. 황 세무사는 "일반적으로 부동산을 증여할 때 시세의 약 70% 수준인 기준시가로 평가하므로 상당한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며 "건물에 전세 보증금이나 대출 등이 끼어 있으면 절세 효과는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실제 현금 30억원을 그대로 증여할 경우 내야 할 증여세는 9억252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시세가 30억원(기준시가 21억원)인 건물을 증여한다면 세금은 6억120만원으로 줄어든다. 여기에다 전세 보증금과 대출을 낄 경우 현금 증여 때 내야 할 세금의 절반 이상을 줄일 수 있다.

고준석 신한은행 갤러리아팰리스 지점장은 "30억원 정도의 건물이면 보증금과 대출이 각각 3억~5억원가량 있는 게 일반적인 케이스"라며 "이때 증여세는 3억원대 후반~4억원대 초반 정도만 내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이 보증금이나 대출을 통해 증여세를 줄이는 것을 법적인 용어로 '부담부 증여'라고 한다. 과세 당국은 부담부 증여를 통한 탈세를 막고자 다양한 장치를 두고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한 예로 작년 20억원(기준시가 10억원) 상당의 토지를 열한 살짜리 조카에게 증여한 B씨는 토지를 담보로 빌린 3억원도 함께 넘겨줬다. 이에 따라 당시 채무 3억원을 차감한 7억원에 대해서만 증여세를 신고,납부해 쏠쏠한 절세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세무서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과세예고 통지서를 받았다. 세무서는 조카가 실질적으로 채무를 인수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7억원이 아닌 10억원 전체에 대해 증여세를 추가 과세하겠다고 밝혔다.

황 세무사는 이와 관련,"미성년자의 경우 민법상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유효한 법률행위를 하기 어렵다"면서 "이에 따라 부담부 증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조카를 대신해 법정대리인인 부모가 직접 증여 계약을 체결하거나 이에 동의했음을 증명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녀 채무상환 능력 검토를

자녀가 채무상환 능력이 있는지도 반드시 검토해야 할 항목이다. 증여가 이뤄진 이후 인수한 채무는 자녀가 본인 소득범위 내에서 상환해야 한다. 부모가 대신 내주는 경우엔 추가적인 증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미성년자인 조카도 사실 별다른 소득이 없기 때문에 대출 3억원에 대해 원리금을 부모가 대신 내줘야 한다.

결국 상가,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을 증여해 자녀의 채무상환 능력을 확보해 주는 게 좋다. 수익형 부동산은 임야 등과 달리 증여 후 임대소득이 발생해 자녀에게 귀속되므로 부동산 임대소득으로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다.

부담부 증여가 일반적으로 부동산 가액에서 자녀가 인수하는 채무를 차감한 금액에 대해 증여세를 과세하므로 단순 증여보다 유리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채무에 해당하는 부동산 가액에 대해서는 증여하는 부모에게 양도세를 과세하므로 부담부 증여로 항상 세금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다주택자가 주택을 증여할 경우 부담부 증여로 인한 절세 효과보다 양도세 중과에 따른 세 부담 증가가 더 클 수 있다. 예를 들어 3주택 중 1채를 증여할 때 채무에 대한 양도세율이 60%로 중과되므로 증여세 최고세율인 50%보다 높다. 2주택일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2주택의 양도세율은 50%이지만 각종 공제 등을 고려할 때 통상적으로 단순 증여가 유리한 경우가 많다.

◆실거래가 증여가 유리할 수도

증여하는 부동산은 대체로 기준시가로 평가해 증여세를 납부하면 된다. 하지만 증여일 전후 3개월 이내 실제 매매가격 또는 감정가격이 있을 경우에는 기준시가가 아닌 해당 매매가나 감정가로 증여 재산을 평가한다.

이에 따라 이 기간 내 부동산을 취득해 증여하면 기준시가가 아닌 실제 거래가격으로 증여세를 계산해야 하므로 불리하다. 아울러 아파트처럼 정부가 실거래가를 신고하도록 돼 있는 부동산도 시가로 신고하는 게 바람직하다.

실거래가로 신고해 증여세를 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손해인 것만은 아니다.

증여받은 부동산을 나중에 매각할 경우 취득가액이 높아져 양도세를 덜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시가 5억원(기준시가 3억원)짜리 아파트 1채를 증여받아 2년 뒤 7억원에 처분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기준시가인 3억원에 신고한 것이 그대로 세무서에서 받아들여졌다면 증여세는 약 4000만원을 내게 된다. 하지만 2년 뒤 양도가액은 7억원,취득가액은 3억원이 적용돼 양도차익 4억원에 대해 약 1억3000만원의 양도세를 내야 한다.

반면 실제 매매가인 5억원으로 신고했다면 증여세는 약 9000만원으로 늘지만 매도시 취득가액이 5억원이 적용되면서 양도세는 6000만원으로 줄어든다. 총 세액을 계산하면 시가로 신고할 때 오히려 2000만원가량 이득을 볼 수 있는 셈이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