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 어린 신랑이 부엌을 자주 들락거렸다. 이를 성가시게 여긴 연상의 신부가 부지깽이로 신랑의 이마를 툭 건드려 상처를 내고 말았다. 방에 들어가 이불을 쓰고 누운 아들 이마에 난 상처를 본 어머니가 물었다. "왜 이마가 터졌느냐".아들은 "염소를 먹이러 갔다가 뒷발에 차였습니다"라고 했다. 가슴을 쓸어내린 신부는 이후 신랑을 잘 섬기며 살았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구비문학대계')

경남 진주시 명석면에 전해져 오는 이 설화는 연상의 신부와 연하 신랑 간에 갈등이 생겼다 나중엔 원만한 관계를 이룬다는 얘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다른 지방에도 이런 내용의 얘기는 수두룩하다. 조혼 풍습으로 맺어진 연상녀 연하남 부부가 워낙 많았기 때문일 게다. 연상녀 연하남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과거처럼 조혼에 의한 게 아니라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고 경제력이 확대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통계청의 혼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초혼 23만6677건 중 여자가 연상인 혼인은 3만3794건으로 14.3%를 차지했다.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90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10여년 전인 1999년 10.1%보다도 4.2%포인트나 증가했다. 여성이 남성의 권위나 재력에 의존하지 않게 되면서 결혼관도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연하남과 가사 육아 돈벌이를 분담하며 사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이 늘고 있는 것이다.

남성들도 가족의 생계를 떠안고 힘들다는 내색조차 못한 채 끙끙 앓는 것 보다는 따뜻한 모성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보듬어 주고,돈도 함께 버는 연상의 여성을 원하는 추세다. 남녀간에 가장의 권위와 경제적 의무,정신적 역할까지 나눠 갖는 '빅딜'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흐름은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 결혼정보업체가 남녀 12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사랑한다면 나이는 상관없다'고 답한 여자가 54.5%,남자는 49.4%,에 달했다. '거부감이 없다'는 응답도 각각 18.9%,22.7%였다.

이렇다 보니 연상녀 연하남 코드는 영화나 드라마에 예사로 등장하고 '누난 너무 예뻐''누난 내 여자니까' 같은 노래도 인기다. 연하남과 사귀거나 결혼을 원하는 여성을 뜻하는 '쿠거(Cougar)족'이란 말까지 생겼다. 평생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체통을 중히 여겨온 어르신들은 불호령을 내릴지 모르지만 세태는 이렇게 바뀌고 있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