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성장 환율 덕…실속이 중요
사실 작년 경제성장 자체는 그리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주요 선진국들이 줄줄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중에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0.2% 증가해 마이너스 성장은 면했다.
물론 8~9% 성장한 중국 같은 나라와 비교하면 초라하지만,어차피 발전 수준이 다른 중국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달러표시 1인당GNI가 줄어든 것과 경제성장 성과가 나쁘지 않은 것은 서로 관련이 없지 않다. 바로 환율이 올라서 경제성장이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작년 경제성장에는 소비나 투자와 같은 내수보다는 수출에서 수입을 뺀 '순수출'이 더 기여했다. 내수의 성장기여도는 -3.8%포인트였지만 순수출의 성장기여도는 4.0%포인트였다.
이처럼 환율 상승으로 달러 표시 1인당GNI가 줄면서 경제성장을 유지한 것이 잘못된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달러 표시 국민소득은 국제비교를 위해 국민계정의 회계단위가 달러라는 것을 반영할 뿐,한국인의 생활수준과 직접 관련이 없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환율이 등락하는 바탕에 외자 유출입이 있다는 사실이다. 외자는 유입과정에서 환율을 낮추지만,그 결과 국제수지가 악화되면 갑자기 유출됨으로써 외환위기로 이어지곤 한다. 한국은 97년 위기 전후에 바로 그런 경험을 했다. 위기 전 한국은 외자 유입 때문에 가능했던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을 놓고 법석을 떨었지만, 뒤이은 외환위기로 국민소득이 6000달러대로 곤두박질쳤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위기 후 다시 외자 유입으로 환율이 내린 결과 1인당GNI가 증가한 것도 그만큼 실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1인당GNI는 2007년 2만달러까지 올라갔지만,국제수지는 악화되었다. 꼭 그 결과는 아니지만 2008년 말 급격한 외자 유출이 일어나 환율이 상승함으로써 2만달러는 간단히 깨지고 말았다.
지금 또 다시 진행되고 있는 외자 유입과 그로 인한 환율 하락을 그대로 둔다면 달러표시 1인당GNI는 쉽게 상승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 순수출을 압박,경제성장을 어렵게 한다. 물론 내수가 충분히 살아나 주면 그런 것은 큰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그러나 소비 증가는 국민소득의 70%에 이르는 가계부채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투자가 늘어나 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만,위기 후 수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그 뾰족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실정이다. 당연히 외자 유입과 환율 하락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이 궁극적으로 선진국이 되려면 달러 표시로도 고소득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 · 단기적으로 보면 환율 하락에 기댄 소득 상승은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
이것은 바로 중국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중국은 엄청나게 높은 환율로 실속을 챙기면서 달러 표시 소득이 낮은 것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거기에서 "유능한 상인은 자신의 부를 감춘다"는 중국인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중국은 아직 공산국가이고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인데,한국인이 중국인보다 유능한 상인이 못 되어서는 말이 안 될 것 같다.
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