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불콰한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술병을 흔들며 호객(?)하는 점주들,냄새가 구수한 음식들로 넘쳐나는 가판대… 북적대는 시골 5일장에 와 있는 느낌이다. 일본 니가타에서 열린 '사케노진'의 풍경이 그렇다. '사케로 진을 친다'는 뜻의 사케노진은 매년 3월 둘째주 토 · 일요일 열리는 술박람회.니가타현의 96개 양조장 거의 대부분이 참여해 각자의 대표 사케를 선보이는 자리다. 박람회장 한바퀴를 돌면 500여종의 사케를 시음할 수 있다. '니가타 탄레'(니가타 사케의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열린 이번 박람회는 이틀간 8만7000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Take 1) 명품 사케의 본향

니가타현은 사케의 본고장이다. 96개 양조장에서 1000여종의 사케 브랜드를 생산한다. 일본 내 사케 출하량으로는 효고현,교토부에 이어 3위를 차지하지만 고급주 출하량에선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니가타가 사케 명산지가 된 것은 좋은 물 덕분이다. 이 지역 물은 미네랄 성분이 적게 들어있는 연수이기 때문에 발효가 서서히 일어나 섬세하고 부드러운 술이 만들어진다는 설명이다. 쌀 역시 중요한 재료다. 니가타현은 밥맛 좋은 고시히카리라는 쌀이 유명하지만 술을 담그는 데는 쓰지 않는다. 술을 만들 땐 양조용쌀을 사용한다.

양조용 쌀의 생산지는 물이 깨끗하고,일조량이 적당한 경사지나 산간지역이 많다. 니가타가 바로 그런 곳이다. 3년 전부터는 고시탄레라는 새 품종의 쌀을 개발해 사용을 늘리고 있다. 여기에 겨울철의 많은 눈과 습도,'토우지'(양조 기술자)로 대표되는 양조기술 등이 어우러져 명품사케 하면 일본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지역이 된 것.

사케는 여러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쌀을 깎아낸 정도(정미율)와 원재료에 따른 분류가 기본이다. 주조용 쌀알의 겉부분엔 단백질 등의 영양소가 많은데 술에는 좋지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를 깎아내 탄수화물만으로 술을 담가야 은은한 향과 깨끗한 맛의 사케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정미율이 높을수록 사케의 품질은 올라가는데,쌀을 40% 이상 깎아 만든 술을 '긴조슈',50% 이상이면 '다이긴조슈'라 한다. '준마이슈','혼조조슈'는 원료에 따라 나눈 이름.쌀과 누룩,물만으로 빚은 술을 준마이슈,세 가지 재료에 양조 알코올을 넣어 빚은 술을 혼조조슈라 한다.

Take 2) 병색깔과 온도에 따른 맛 차이

술병의 색깔로도 사케의 등급을 대략 확인할 수 있다. 보통 고급 사케는 어두운 빛깔의 병에 담는데 이는 빛을 차단해 숙성이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케 온도에 따라서도 구분한다. 차게 마시는 사케를 '레이슈',따뜻하게 마시는 사케를 '아츠칸'이라고 한다. 대체로 혀는 온도가 높으면 감칠맛을 강하게 느끼고 신맛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온도가 높아지면 맛과 향이 풍부해진다. 그래서 아츠칸일수록 강하고 깊은 맛,드라이한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된다. 반면 레이슈는 담백한 맛의 음식과 궁합이 맞는다. 사케는 보통 17~20도의 상온으로 마시는 게 가장 맛있다. 데워 마실 땐 42도 전후가 알맞다.

니가타시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을 달리면 사도라는 섬을 만난다. 사도는 제주도 절반 정도 크기로 '사케의 섬'이란 별명이 있을 만큼 양조장이 많다. 138년 역사의 호쿠세츠 양조장이 눈길을 끈다. 세계적인 레스토랑 노부에 사케를 독점 공급하는 곳이다.

이 양조장의 사케가 조명을 받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20여년 전 일본의 야자와라는 록가수가 호쿠세츠의 사케 두 병을 선물 받았는데 그의 친구인 노부가 이 맛에 푹 빠졌다. 노부는 호쿠세츠의 사케를 자신의 레스토랑에만 공급해 달라고 제안했고,자기 식당에선 오직 호쿠세츠 사케만을 판매한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노부의 공동 창업자인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와 의기투합하여 만든 '다이긴조 YK35'가 현재 이곳을 대표하는 사케다.

호쿠세츠 양조장의 나카가와 야쓰오 총무부장은 "술은 기본적으로 요리의 풍미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한다"며 "사케가 일본 음식과 함께 홍보돼 세계화에 성공했듯이 한국술도 한국음식과 함께해야 성공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니가타=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 여행TIP

일본 열도 중앙의 니가타현은 동해에 접해 있다.

대한항공은 일본 니가타 직항편을 매일 1편씩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2시간 정도.

니가타현 해안선 중앙부에 있는 이와무로 온천이 유명하다. 이와무로는 니가타 게이샤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에도시대부터 있었던 촌장 저택을 활용한 '고지노 야토 다카시마야'(www.takasimaya.co.jp) 등 전통 료칸이 많다. '시라다카노 유 가호'(www.kahou.com) 료칸은 니가타의 자연을 풍경화 보듯 즐길 수 있어 좋다. 니가타현 서울사무소(02)773-3161,www.niiga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