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대나무 마디는 높이 올라가기 위한 성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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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일을 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자신의 능력부족을 탓하는 사람보다 남의 탓으로 핑계 대는 사람이 많다. 자기에게 원인이 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남의 탓이나 하며 이런 저런 핑계를 대는 것은 성공하고자하는 사람의 참된 자세가 아니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 이란 말처럼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기다려야 하며, 만약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처칠이 영국 수상으로 있을 때 어느 날 전람회에 번번이 낙선한 젊은 화가가 찾아왔다.
“이번이 6번째 낙선입니다. 주위에서는 다들 제 그림이 좋다고 하는데....심사위원들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볼 줄도 모르면서 심사한다면 어떻게 좋은 작품을 가려낼 수 있겠습니까?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이것은 미술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문제입니다. 수상께서는 이를 어찌 생각하십니까?”
처칠은 화가의 질문에 대답을 하였다.
“젊은이, 나는 평생 달걀을 낳아 본 적이 없소. 나는 암탉이 아니니까. 하지만 상한 달걀과 싱싱한 달걀은 가려낼 줄 안다오. 젊은이는 어떻소.”
“저도 그것은 가려낼 줄 압니다.”
“그것 보시오. 그러니 그림을 못 그리는 심사위원일지라도 좋은 작품을 가려낼 수 있지 않겠소? 물론 심사위원들이 편파적일 수 도 있고, 잘못 심사를 했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런 것에 지나치게 마음을 쓰는 것은 젊은이를 위해 좋지 않아요. 이런 경우 두 가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첫째는 미술계의 문제를 고치기 위하여 뛰어 다니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의 그림이 더 좋아지도록 노력하는 것이오. 첫 번째는 정치가가 해야 할 일이고, 두 번째는 화가가 해야 할 일이지요. 당신은 정치가가 될 참인가요?”
화가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뒤 젊은 화가는 처칠의 말을 되새기며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몇 배 더 노력했고, 결국 훌륭한 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누구의 탓을 돌리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없으며 발전도 없다.
세상은 냉정하며 나를 위해 움직여 주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으며, 결과도 달라지지 않는다.
나를 위해 세상이 변하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실패에 대해 빨리 깨달은 사람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실패의 원인에 대해 깨달음이 늦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반대의 결과가 발생한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깨달음은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나가는 자와 그 자리에 머무는 자는 깨달음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지난 달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피겨 부문에 김연아와 악연이 있는 심판이 배정되었다. 번번히 김연아에게 석연치 않은 감점을 주었기에 올림픽 관계자와 언론에서는 이번에도 김연아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리지 않을까 내심 걱정을 많이 하였다.
많은 사람의 우려와는 달리 김연아는 실수 없이 완벽한 경기를 하였고,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받았다. 자신도 만족할 만큼 최고의 경기를 했기 때문에 심판도 최고점을 주었을 것이다. 만약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 심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을지도 모른다. 선수의 실수보다 심판의 판정에 문제를 제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연아는 처칠에게서 충고를 들은 화가처럼 심판에 대한 마음은 비우고 자신이 스스로 변하여 경기에 한층 더 최선을 다했기에 결국 최고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성공을 원하는 사람은 실패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분석하고 연구 한다.
핑계는 그 순간 마음은 편할지 모르지만 성공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성공보다 실패에서 배울 것이 훨씬 더 많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실패는 경험이며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다.
그래서 때로는 실패도 즐길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실패의 아픔은 더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서 겪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나무가 하늘을 향해 높이 자랄 수 있는 것도 마디마디가 있기 때문이니.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루지 못한 꿈과 목표들이 정말 어렵고 힘들었는지,
아니면 핑계로 자신을 합리화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실패를 긍정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처하면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
누구에게나 성장통은 필요한 것이다. (hooam.com / 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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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탓이나 하며 이런 저런 핑계를 대는 것은 성공하고자하는 사람의 참된 자세가 아니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 이란 말처럼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기다려야 하며, 만약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처칠이 영국 수상으로 있을 때 어느 날 전람회에 번번이 낙선한 젊은 화가가 찾아왔다.
“이번이 6번째 낙선입니다. 주위에서는 다들 제 그림이 좋다고 하는데....심사위원들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볼 줄도 모르면서 심사한다면 어떻게 좋은 작품을 가려낼 수 있겠습니까?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이것은 미술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문제입니다. 수상께서는 이를 어찌 생각하십니까?”
처칠은 화가의 질문에 대답을 하였다.
“젊은이, 나는 평생 달걀을 낳아 본 적이 없소. 나는 암탉이 아니니까. 하지만 상한 달걀과 싱싱한 달걀은 가려낼 줄 안다오. 젊은이는 어떻소.”
“저도 그것은 가려낼 줄 압니다.”
“그것 보시오. 그러니 그림을 못 그리는 심사위원일지라도 좋은 작품을 가려낼 수 있지 않겠소? 물론 심사위원들이 편파적일 수 도 있고, 잘못 심사를 했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런 것에 지나치게 마음을 쓰는 것은 젊은이를 위해 좋지 않아요. 이런 경우 두 가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첫째는 미술계의 문제를 고치기 위하여 뛰어 다니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의 그림이 더 좋아지도록 노력하는 것이오. 첫 번째는 정치가가 해야 할 일이고, 두 번째는 화가가 해야 할 일이지요. 당신은 정치가가 될 참인가요?”
화가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뒤 젊은 화가는 처칠의 말을 되새기며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몇 배 더 노력했고, 결국 훌륭한 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누구의 탓을 돌리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없으며 발전도 없다.
세상은 냉정하며 나를 위해 움직여 주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으며, 결과도 달라지지 않는다.
나를 위해 세상이 변하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실패에 대해 빨리 깨달은 사람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실패의 원인에 대해 깨달음이 늦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반대의 결과가 발생한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깨달음은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나가는 자와 그 자리에 머무는 자는 깨달음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지난 달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피겨 부문에 김연아와 악연이 있는 심판이 배정되었다. 번번히 김연아에게 석연치 않은 감점을 주었기에 올림픽 관계자와 언론에서는 이번에도 김연아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리지 않을까 내심 걱정을 많이 하였다.
많은 사람의 우려와는 달리 김연아는 실수 없이 완벽한 경기를 하였고,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받았다. 자신도 만족할 만큼 최고의 경기를 했기 때문에 심판도 최고점을 주었을 것이다. 만약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 심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을지도 모른다. 선수의 실수보다 심판의 판정에 문제를 제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연아는 처칠에게서 충고를 들은 화가처럼 심판에 대한 마음은 비우고 자신이 스스로 변하여 경기에 한층 더 최선을 다했기에 결국 최고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성공을 원하는 사람은 실패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분석하고 연구 한다.
핑계는 그 순간 마음은 편할지 모르지만 성공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성공보다 실패에서 배울 것이 훨씬 더 많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실패는 경험이며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다.
그래서 때로는 실패도 즐길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실패의 아픔은 더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서 겪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나무가 하늘을 향해 높이 자랄 수 있는 것도 마디마디가 있기 때문이니.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루지 못한 꿈과 목표들이 정말 어렵고 힘들었는지,
아니면 핑계로 자신을 합리화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실패를 긍정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처하면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
누구에게나 성장통은 필요한 것이다. (hooam.com / 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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