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중국의 선택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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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중국의 LCD(액정표시장치)생산업체 선정 발표가 당초 예정보다 한 달가량 늦어지고 있다. 2월 말에 공개한다더니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 전국정치협상회의) 직후로 바뀐 뒤 3월이 끝나가는 지금도 소식이 없다.
30억~40억달러의 초대형 투자 프로젝트인 만큼 공장설립 신청서를 낸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관련 업체들은 초조하기만 하다. 중국정부는 몇 개 회사에 허가서를 내줄 것인지도 공개하지 않지만, 2~3곳만 선별될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중국정부가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고려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이런 점을 충분히 검토해서 허가여부를 결정하는 건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선별과정이나 결과에서 불투명한 것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외국기업이 중국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본 경우도 많다. 그것은 사업의 실패가 아니라 외국인에게는 불투명하게 느껴지는 절차와 중국 내부의 사정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의 한 석유화학업체는 2005년 중국 지방정부의 말만 듣고 5억달러를 투자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중앙정부가 최종 허가를 안 해줬고,이것을 해결하느라 중국 국영업체에 지분의 상당 부분을 넘겨야 했다. 뭔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LCD투자 허가 건도 발표가 늦어지면서 온갖 설들이 쏟아진다. '대만업체에 대해선 무조건 배려한다','어느 기업이 신청한 지역의 배후에는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 있다','이미 사전에 업체를 정해놓았고 신청서를 받는 것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등등 여러 설이 분분하다. 특별한 이유없이 발표가 미뤄지는 걸 보면 진짜 뭔가 복잡한 사연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만에 하나 뭔가 시나리오를 짜놓고 거기에 꿰맞추려 한다면 곤란한 일이다. 중국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중국정부는 한국기업에 수년 전부터 LCD공장을 중국에 건설해달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요청해왔다. 작년 11월 최경환 지식경제부장관이 중국을 방문,천더밍 중국 상무부장과 회담했을 때도 천 장관은 "LCD공장을 중국에 세울 수 있도록 한국정부가 투자허가를 빨리 내달라"고 요청했었다.
LCD는 한국기업이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한국의 전략산업이란 점에서 국외로 기술을 내보내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전략적 관계를 고려해 한국정부가 큰 결단을 내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막상 중국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결정하고 나니까 중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젠 우리가 고르겠다'고 나섰다. 뭔가 어색하고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국이 불신을 자초하지 않을 수 있는 한 가지 길은 있다. 선정기준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되 다른 변수를 제외하고 실력대로 뽑는 것이다. 기술적 우위나 세계시장 지배력 등 철저하게 비정치적 요소로만 기준을 삼아 업체를 선정한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중국이 덩치만 큰 나라가 아니라 글로벌 리더십을 가진 나라임을 입증하기 위해선 어떤 선택에 대해 다른 국가가 승복할 수 있는 철저함과 깨끗함을 보여줘야 한다. 중국의 결정이 주목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
30억~40억달러의 초대형 투자 프로젝트인 만큼 공장설립 신청서를 낸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관련 업체들은 초조하기만 하다. 중국정부는 몇 개 회사에 허가서를 내줄 것인지도 공개하지 않지만, 2~3곳만 선별될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중국정부가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고려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이런 점을 충분히 검토해서 허가여부를 결정하는 건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선별과정이나 결과에서 불투명한 것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외국기업이 중국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본 경우도 많다. 그것은 사업의 실패가 아니라 외국인에게는 불투명하게 느껴지는 절차와 중국 내부의 사정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의 한 석유화학업체는 2005년 중국 지방정부의 말만 듣고 5억달러를 투자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중앙정부가 최종 허가를 안 해줬고,이것을 해결하느라 중국 국영업체에 지분의 상당 부분을 넘겨야 했다. 뭔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LCD투자 허가 건도 발표가 늦어지면서 온갖 설들이 쏟아진다. '대만업체에 대해선 무조건 배려한다','어느 기업이 신청한 지역의 배후에는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 있다','이미 사전에 업체를 정해놓았고 신청서를 받는 것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등등 여러 설이 분분하다. 특별한 이유없이 발표가 미뤄지는 걸 보면 진짜 뭔가 복잡한 사연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만에 하나 뭔가 시나리오를 짜놓고 거기에 꿰맞추려 한다면 곤란한 일이다. 중국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중국정부는 한국기업에 수년 전부터 LCD공장을 중국에 건설해달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요청해왔다. 작년 11월 최경환 지식경제부장관이 중국을 방문,천더밍 중국 상무부장과 회담했을 때도 천 장관은 "LCD공장을 중국에 세울 수 있도록 한국정부가 투자허가를 빨리 내달라"고 요청했었다.
LCD는 한국기업이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한국의 전략산업이란 점에서 국외로 기술을 내보내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전략적 관계를 고려해 한국정부가 큰 결단을 내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막상 중국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결정하고 나니까 중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젠 우리가 고르겠다'고 나섰다. 뭔가 어색하고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국이 불신을 자초하지 않을 수 있는 한 가지 길은 있다. 선정기준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되 다른 변수를 제외하고 실력대로 뽑는 것이다. 기술적 우위나 세계시장 지배력 등 철저하게 비정치적 요소로만 기준을 삼아 업체를 선정한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중국이 덩치만 큰 나라가 아니라 글로벌 리더십을 가진 나라임을 입증하기 위해선 어떤 선택에 대해 다른 국가가 승복할 수 있는 철저함과 깨끗함을 보여줘야 한다. 중국의 결정이 주목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