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중심가의 퐁피두센터 6층 특별전 갤러리. 뚱뚱하다 못해 살점이 밖으로 터져 나올 것 같은 한 여인의 나체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통적인 미의 기준으로 아름답고 이상적인 인간의 몸을 재현한 누드화가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친손자로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는 루시앙 프로이트(88)의 1995년 작품 '베네피츠 슈퍼바이저 슬리핑(Benefits Supervisor Sleeping · 잠자고 있는 사회복지 감독관)'이다.

비정상적이리만치 살찐 여자의 알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그림은 2008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무려 336만 달러(약 380억원)에 낙찰돼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지금까지 거래된 생존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 작품이다.

프로이트의 작품값은 2002년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이후 치솟기 시작했고,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미술 시장이 주춤해지기 전인 2008년 최고조에 달했다.

지난 10일 개막돼 7월19일까지 이어지는 '루시앙 프로이트 회고전'은 런던에 있는 아틀리에를 매개로 그의 예술 세계를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회다. 퐁피두센터에서 1987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빅 이벤트다.

이번 전시회에는 1960년대부터 자신의 아틀리에를 중심으로 작업한 자화상과 초상화,판화 등 50여 점을 내걸었다.

프로이트는 베를린에서 태어난 유태인으로 나치의 억압을 피해 1933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망명했다.

1939년 영국 시민권을 얻은 뒤 줄곧 런던에서 작업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그림에 모델로 등장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슈퍼 모델 케이트 모스,퍼포먼스 아티스트이자 패션 디자이너 레이 보웨리 등의 유명세만큼이나 대중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프로이트에게 작업실이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2005년 작 '벌거벗은 찬미자'에서 보듯 아틀리에는 창작의 산실인 동시에 그림을 구성하는 '미장센'의 무대이기도 하다.

낡고 오래된 철제 침대, 해진 소파, 높은 의자 위에 놓인 팔레트, 캔버스에 추상화를 그린 것처럼 벽과 나무 바닥에 마구 흩뿌려 놓은 물감 자국, 구겨진 침대 시트, 이젤 등 아틀리에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림 속의 모델과 함께 등장한다. 그렇게 화가의 아틀리에는 그림이 되고, 그림은 아틀리에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특징은 장르나 기법 면에서 매우 단순하다는 점이다. 그가 집요하게 천착해온 주제는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사람들이다. '모든 작품은 자서전'이라고 했던 그의 그림 속에는 친구,연인,가족,동료 예술가 혹은 자신이 등장한다.

세잔의 작품 '나폴리의 오후'를 재해석한 2000년 작 '세잔 따라하기'를 비롯해 '천창 아래의 레이''두 아이와 반영,자화상' 등의 그림들은 화가의 아틀리에에 있는 가구나 오브제,화가가 실제로 사용하는 그림 도구 등을 이용해 그때 그때 상황에 맞도록 재구성된 아틀리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는 소수의 지인들만을 위한 연극 무대에서 배우가 되어 연기를 펼치는 것처럼 지극히 사적인 화가의 삶을 반영한다.

초상화 외에 정원의 풍경이나 물이 흐르는 개수대,자신이 키우는 개를 그리기도 하지만 이런 소재들 역시 화가의 아틀리에를 구성하는 것들이고 개인적인 삶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것들이다.

그에게 초상화란 모델과의 유사성이 아니라 한 인간을 얼마나 밀도 있게 나타내는가라는 '재현'의 문제와 직결된다.

화면에 꽉 찬 인물들의 몸은 피사체를 너무 가까이 두고 찍은 사진처럼 기이하게 왜곡돼 있다. 거친 붓 터치와 두껍게 바른 물감의 마티에르는 시간의 흔적이 남긴 인간의 '무거운' 피부 같다.

화면에 등장하는 모델들은 거의 대부분 벌거벗고 있다. '누드(nude)'가 아닌 '네이키드(naked)'로 말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고전주의적 누드화와는 달리 아무런 상징적 코드 없이 문자 그대로 벌거벗은 인간의 실존을 보여준다.

프로이트는 이처럼 모델이나 회화에 현존성과 중량감을 함께 부여하는 작가다. 노골적으로 부각된 육체성 때문에 모델들의 표정은 무기력하고 공허해 보인다.

따라서 그의 그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심오하고 복잡한'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육체가 아니라,'원초적이고 동물적인' 육체가 된다.

그는 말했다. "나는 실제 살아있는 살점처럼 그리고 싶다"고.현대미술에서 예술은 움베르토 에코의 '열린 작품'이라는 개념처럼 무한히 열려 있다. 때론 관객이 보기에 불편하리 만큼. 하지만 그렇게 열려 있기에 깊은 성찰의 기회를 주는 게 예술이 아닐까.

/파리=여문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