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는 지금까지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였다. 이제 새로운 기회를 찾도록 우리에서 풀어주겠다. "

중국 지리자동차의 리수푸 회장이 28일(현지시간) 포드 자회사인 스웨덴 볼보를 18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한 뒤 기자들에게 밝힌 소감이다.

지리의 볼보 인수는 중국 자동차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으로 기록됐다. 중국 인도 등 신흥국 자동차 업체들이 속속 선진국의 대형 브랜드 사냥에 성공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를 만드는 다임러그룹은 최대 경쟁자인 BMW와 손잡고 플랫폼 공유를 포함한 비용절감 방안을 찾아 나섰다.

◆두각 나타내는 중국 · 인도 업체

'안전의 대명사'로 불려온 볼보와 각국 안전기준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지리 간 결합은 관련 업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기업과 같은 후발주자도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를 삼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서다. 인도 타타자동차는 2008년 영국의 고급차인 재규어 · 랜드로버를 17억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지리는 볼보를 모회사와 별도로 운영할 계획이다. 렉스 케서마커스 볼보 해외사업담당 사장은 최근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지리가 볼보를 독립적으로 경영하는 한편 스웨덴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지리는 볼보 인수를 계기로 작년 33만대 수준이던 판매량을 2015년까지 200만대로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또 중국 시장을 볼보의 '제2 홈 마켓'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와 관련,파이낸셜타임스는 "전 세계 자동차 업계의 무게중심이 미국과 서유럽에서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평했다.

지리는 중국 최대 민영 자동차업체로,1~1.8ℓ급 엔진을 자체 개발하고 있다. 영국 택시 제조업체인 망가니스 브론즈 지분 51%를 인수했으며,미국 진출도 추진 중이다.

◆'속도 · 유연성'새로운 짝짓기 배경

1990년대 후반 시장 지배력 확대를 위한 대규모 인수합병(M&A)과 달리 최근 들어 '속도와 유연성 추구'가 새로운 짝짓기의 배경이 되고 있다고 자동차산업연구소는 진단했다. 권성욱 연구위원은 "신흥시장 및 친환경차 시장이 커지는 등 환경이 급변하면서 대응 능력을 높이려는 업체 간 제휴가 활발하다"며 "종전에 약자였던 업체들이 새로운 성장기회를 맞는 등 완전히 새 판이 짜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다임러와 중국 BYD 간 제휴다. 다임러는 중국 내에 기술센터를 설립한 뒤 새 브랜드의 전기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폭스바겐은 작년 말 일본 스즈키 지분 19.9%를,스즈키는 폭스바겐 지분 2.5%를 각각 취득했다. 자본 및 기술 공유를 통해 인도 등 신흥시장을 겨냥한 소형차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김경찬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은 "도요타 GM 등 세계 1위 기업들이 주춤하면서 다수의 글로벌 메이저 업체들이 각축을 벌이는 신경쟁 체제로 바뀌는 중"이라며 "연 500만대 이상 생산능력을 보유한 거대업체가 현재 4개에서 2015년 8개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만 무풍지대 아니다"

한국에선 글로벌 업계의 합종연횡 바람에서 한 발 비켜있는 모습이다. 내수 시장의 80%를 과점하고 있는 현대 · 기아자동차가 흡수통합을 활용한 성장 전략에 부정적이어서다. 하지만 한국만 예외가 될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쌍용차가 오는 6월께 국제입찰을 통해 매각 절차를 밟게 된다. GM대우와 르노삼성 역시 대주주의 전략 변화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