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2시50분께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김중수 차기 한국은행 총재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전날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공항에서 출발,대한항공 KE902편으로 10시간 넘게 비행했지만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입국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기자를 만나 건넨 첫마디는 "이렇게 나와 있으니 상당히 부담스럽다"였다.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걷는 도중 그는 준비한 멘트인 듯 "한은에 근무하는 분들이나 금융통화위원들과 의견을 나누고 조화롭게 끌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나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말을 개인적으로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소신은 분명해 보였다. '김 내정자가 결정된 후 저금리 기조를 예상하고 시장이 한쪽으로 쏠리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시장의 반응에 대해 평가할 수는 없다"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시장에서 내가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의 갭(차이)을 줄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김 내정자를 '저금리 기조를 유지해 경제 성장을 돕는 비둘기파'로 보고 있는 시장에 대해 '차이'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그는 이어 "모든 행동은 사실도 중요하지만 (시장이) 사실이라고 인식하는 것에 의해 행동하니까 소통을 강조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많은 분들이 저의 행동을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시장의 짐작과 다른 행동을 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의 발언이 전해지자 채권시장이 즉각 반응했다. 오후 3시15분 마감을 앞둔 국채선물 가격이 바로 0.05%포인트가량 떨어졌다. 3시 30분 마감인 채권 금리도 0.02%포인트 올랐다. 올 들어 낙폭이 컸다는 부담감으로 오름세를 나타냈던 국고채 금리는 이날 큰 폭으로 뛰었다. 지표물인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11%포인트 치솟아 연 4.53%를 기록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 역시 0.08%포인트 올라 연 3.92%에 마감했다.

김 내정자는 한은의 독립성에 대해서도 뚜렷한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한은의 독립성은 기본"이라며 "한은의 독립성에 챌린지(도전)하면서 얘기할 것은 없다"고 밝혔다. 또 "한은 독립성을 기본으로 두고,그것보다 하나 더 높게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은 조직 혁신에 대한 질문에는 곧바로 "어느 조직이든 잘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조직 개혁이 이뤄질 수 있다는 뉘앙스로 들렸다.

이날 공항에는 이주열 한은 부총재와 박원식 한은 비서실장이 나와 김 내정자를 맞았다. 김 내정자는 내달 1일 취임식을 가진 후 9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시작으로 공식 일정에 돌입한다. 이번 회의에서 4월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