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드라마를 보면서 집사람과 대화를 하게 됐다. "저 드라마에 나오는 커플처럼 우리도 천생연분일까?", "당연하죠.저는 항상 당신이 내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라는 아내의 대답에 깊은 상념에 빠졌다.

흉부외과 의사의 아내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젊은 시절,웬 이사는 그렇게도 자주 했는지. 따져 보니 지금까지 이사는 20번 했으며 군 시절에는 평균 6개월에 한 번씩 옮겼다.

집에 들어오는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다. 또한 귀가하는 날은 특별한 날뿐이었다. 집에 가더라도 몸과 마음이 지친 터라 가족에게 따뜻하게 인사하거나 미소를 짓기는커녕 피곤함만 보여줬다.

하루는 출근하려는데 당시 여섯 살이었던 둘째 딸이 "안녕히 다녀오세요"라는 인사 대신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해 일순 당황했다. 또 어느 날 아들이 졸업한다고 졸업식에 오라기에 "벌써 초등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됐어?"라고 물었다가 면박을 당한 적도 있다. 초등학교 졸업식은 3년 전에 끝났단다.

이렇게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나인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우리가 '천생연분'이란다.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은데 그 모자란 부분을 채워서 하나가 될 수 있다면 바로 그게 천생연분이란다.

아내의 대답을 듣고 나는 비익조라는 상상의 새를 생각했다. 암수가 각각 한쪽의 눈과 날개를 가지고 있어서 혼자서는 절대 날 수 없는 새이다. 천생연분의 짝을 만났을 때야 비로소 서로의 몸을 맞대고 각자 가지고 있는 날개를 퍼덕여서 하늘을 난다.

비단 아내와 나와의 관계만이 아니다. 신기하게도 흉부외과 의사인 나를 보고 자란 큰 아들은 심장내과 의사로 성장해 나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고 있고,또 다른 자식들은 사업,예술 등 많은 분야에서 내가 갖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

직장에서의 관계도 그렇다. 세종병원에서 한때 내 별명은 'Mr.줄자'였다. 항상 줄자를 한 손에 들고 다니며 외래 의자의 줄을 딱딱 맞추고 액자를 배치할 곳을 직접 지정하곤 했다. 뭐라도 조금 비뚤어져 있으면 담당 직원을 바로 불러 불호령을 내리곤 했다. 그랬던 나의 불 같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우리 직원들은 항상 웃으면서 따뜻하게 나를 대했고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다. 그렇게 서로가 함께 발전할 수 있었다.

사회에서든,가정에서든 완벽하지 않은 나에겐 내 천생연분 비익조가 존재한다. 아내,자식,가족,직원 그리고 친구…. 모두가 그렇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외롭지만은 않다. 비단,나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비익조가 분명 존재한다. 다만,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천생연분이란 그렇게 거창한 단어가 아닌 것 같다. 지금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이,가족이,인연이 바로 천생연분인 것 같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외출을 한다니까 곱게 화장하고 단정히 옷을 차려입는 집사람을 보니,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박영관 세종병원 회장 sjhosp@sejong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