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패션 사진계의 거장 기 부르댕(1928~1991년)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코드를 카메라 렌즈로 비춰낸 작가다. 그는 사진을 통해 섹슈얼리티와 인간의 욕망을 함께 포착했다.

그의 미공개 사진과 영상 작품이 처음으로 서울에 왔다. 제일모직이 청담동의 복합문화공간 꼬르소 꼬모 개관 2주년 기념으로 3월31일부터 5월2일까지 부르댕 작품전을 마련,'어 메시지 포 유' 1권에 실린 그의 작품 75점과 창작 과정을 담은 영상들을 전시한다.

1991년 암으로 사망한 부르댕은 에로티시즘과 폭력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모델을 가혹하게 다룬 작가로 유명하다. 패션 잡지 '보그'에서 30년간 활동한 그는 사진 속에 모호한 설정과 암시,초현실주의적인 미학을 담아냈다. 그의 일부 작품을 마돈나가 뮤직 비디오에 차용했다가 저작권 침해로 고소당하는 등 화제도 끊이지 않았다.

부르댕의 작품 가운데 백미는 찰스 주르당의 구두 광고 시리즈다. 구두 상자 안에 자신을 가두고,그 속에서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을 포착해낸 작품이다. 특별한 연관성을 배제한 채 하나의 사진에서 다른 사진으로 이동하는 방식.신발을 클로즈업하다가 건물을 길게 잡기도 한다. 1978년 찰스 주르당 구두의 봄과 여름 광고로 발표됐던 작품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활용해 초현실적인 스토리를 풀어냈다. 신발 광고 사진 모델이었던 니콜 마이어가 쓴 책 제목이자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1977년 작 '어 메시지 포 유'시리즈는 호텔 메시지 봉투에 마이어의 당찬 포즈를 담은 작품이다.

거울로 둘러싸인 방에서 보여주는 영상도 눈길을 끈다. 이 작품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창작 과정 등을 담은 영상을 디지털로 재편집한 것.반사와 굴절,반복,잔상 등의 조화가 그의 거울 작품을 연상시킨다. 그의 작품 전시를 10여년간 담당한 큐레이터 셸리 버타임은 "부르댕은 관객을 매혹시키는 방법으로 집착에 가까울 만큼 같은 초점을 반복해서 보여준다"며 "그가 거울을 자주 활용한 것도 같은 이미지 속에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02)3018-101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