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인스턴트 식품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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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두부와 멸치와 장조림과…/한상 가득 차려 놓고/이것 저것 골라 자신이 만들어 먹는 음식/그러나 나는 지금/햄과 치즈와 토막난 토마토와 빵과 방부제가 일률적으로 배합된/아메리카의 사료를 먹고 있다/재료를 넣고 뺄 수도/젓가락을 댈 수도/마음대로 선택할 수도 없이/맨손으로 한 입 덥석 물어야 하는 저/음식의 독재.'(오세영 '햄버거를 먹으며'중)
선택의 여지없이 받아 먹어야 한다는 '독재'만이 문제는 아니다. 비만을 유발하고 건강에 해롭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으면서도 도대체 끊을 수가 없다. 늦은 밤 눈길을 확 잡아끄는 맥도날드의 황금아치를 보면 왠지 안심이 된다는 사람들까지 있다. 어디 햄버거뿐일까. 대부분의 인스턴트 식품은 싼 값과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을 무기로 우리의 식탁을 공략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스턴트 식품을 현명하게 먹는 법까지 인터넷에 떠돈다. 피할 수 없다면 적게 먹으면서 '동거'하자는 취지다. 슈퍼 사이즈 말고 라이트를 주문하라,청량음료 대신 우유 · 과일주스를 먹어라,식이섬유가 적어 포만감이 늦게 온다는 것을 기억하라,샌드위치엔 겨자 소스,샐러드엔 저지방 드레싱을 곁들여라….
몸에 나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인스턴트 식품을 단칼에 끊지 못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소시지 베이컨 치즈케이크 등 지방이 많고 열량이 높은 음식은 마약처럼 뇌의 보상중추를 자극,쾌감을 유발함으로써 먹지 않고는 못 견디는 '강박섭식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의 폴 케니 박사팀이 쥐를 대상으로 실험해 과학전문지 '네이처 신경과학'에 실은 내용이다.
연구팀이 쥐들에게 인스턴트 식품을 주기 시작하자 얼마 안돼 입맛이 바뀌면서 마구 먹어댔다고 한다. 당연히 몸무게가 불어났다. 나중엔 점점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해야 '만족'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놀랍게도 인스턴트 식품을 끊고 정상적인 먹이를 주자 쥐들은 단식투쟁이라도 하듯 2주 동안 먹기를 거부했다. 쉽게 말해 코카인처럼 중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사람들이 자주 먹는 음식은 100여 가지였으나 이젠 10여 가지로 줄었다고 한다. 규격화된 인스턴트 식품이 생활 깊숙이 파고든 결과일 게다. 바쁘게 살다 보면 가끔 인스턴트 식품을 먹을 수밖에 없다 해도 그 간편함과 특유의 맛에 홀려 중독되는 지경까지 가서는 안될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선택의 여지없이 받아 먹어야 한다는 '독재'만이 문제는 아니다. 비만을 유발하고 건강에 해롭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으면서도 도대체 끊을 수가 없다. 늦은 밤 눈길을 확 잡아끄는 맥도날드의 황금아치를 보면 왠지 안심이 된다는 사람들까지 있다. 어디 햄버거뿐일까. 대부분의 인스턴트 식품은 싼 값과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을 무기로 우리의 식탁을 공략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스턴트 식품을 현명하게 먹는 법까지 인터넷에 떠돈다. 피할 수 없다면 적게 먹으면서 '동거'하자는 취지다. 슈퍼 사이즈 말고 라이트를 주문하라,청량음료 대신 우유 · 과일주스를 먹어라,식이섬유가 적어 포만감이 늦게 온다는 것을 기억하라,샌드위치엔 겨자 소스,샐러드엔 저지방 드레싱을 곁들여라….
몸에 나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인스턴트 식품을 단칼에 끊지 못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소시지 베이컨 치즈케이크 등 지방이 많고 열량이 높은 음식은 마약처럼 뇌의 보상중추를 자극,쾌감을 유발함으로써 먹지 않고는 못 견디는 '강박섭식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의 폴 케니 박사팀이 쥐를 대상으로 실험해 과학전문지 '네이처 신경과학'에 실은 내용이다.
연구팀이 쥐들에게 인스턴트 식품을 주기 시작하자 얼마 안돼 입맛이 바뀌면서 마구 먹어댔다고 한다. 당연히 몸무게가 불어났다. 나중엔 점점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해야 '만족'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놀랍게도 인스턴트 식품을 끊고 정상적인 먹이를 주자 쥐들은 단식투쟁이라도 하듯 2주 동안 먹기를 거부했다. 쉽게 말해 코카인처럼 중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사람들이 자주 먹는 음식은 100여 가지였으나 이젠 10여 가지로 줄었다고 한다. 규격화된 인스턴트 식품이 생활 깊숙이 파고든 결과일 게다. 바쁘게 살다 보면 가끔 인스턴트 식품을 먹을 수밖에 없다 해도 그 간편함과 특유의 맛에 홀려 중독되는 지경까지 가서는 안될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