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美 의료보험 개혁에서 배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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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높다지만 중병 걸려도 안심
본인부담 줄이고 소외층 더 챙겨야
본인부담 줄이고 소외층 더 챙겨야
지난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추진해 온 의료보험 개혁 법안이 미국 의회를 사실상 통과했다.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지원제도인 메디케이드의 대상을 늘리고 중산층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방법으로 의보 수혜대상자를 대폭 확대하자는 것이 골자다. 이로써 미국 국민의 95%가 의료보장 체계 속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의 의료보장이 이제야 겨우 우리 건강보험 수준을 따라왔다느니 심지어는 이번 개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것보다 뒤떨어진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것이 공공보험이 아닌 민간보험 중심으로 운영되므로 이윤과 영리를 추구하는 시장 상황에서 자유롭지 않고,강제가입 조항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미가입자가 존재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리 의료제도에 대한 자부심이라고 보면 그만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상황인식이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니다. 낙관론자들이 가진 인식 오류는 두 가지 방향에서 나온다. 하나는 미국이라는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건강보험제도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건강보험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보험료가 저렴하고 의료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연간 평균 보험료가 120만원으로 미국의 10분의 1도 안 되고 단돈 1만원이면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거기에 진료비도 상대적으로 싸 감기 치료에 60만원이 넘게 든다는 미국에 비하면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건강보험제도가 가진 장점은 거기까지다.
우선 저소득층에게 정부가 진료비를 지급하는 의료급여 대상자는 전체 국민의 3%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미국은 전체의 15%가 메디케이드라는 무상 의료서비스의 대상이고 노인 및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 보험인 메디케어 수혜자가 19%에 이른다. 이것이 우리나라 사회보장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초라한 성적표다.
또한 미국이 이번 개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5%의 미가입자가 남을 것이라는 조롱도 우리의 건보 사각지대 실상을 알면 하지 못할 말이다. 건강보험료를 6개월 이상 체납,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집이 165만가구에 이른다. 대충 계산해도 300만명을 넘는다. 비율로 따지면 개혁 이전 미국의 보험 미가입자 규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보험의 경우 본인 부담료가 지나치게 높다. 예컨대 최근 암환자 본인 부담률이 5%로 낮아졌다지만 실제 의료비 부담은 수천만원을 넘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보험적용이 안 되는 질병과 치료법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억원에 이르는 진료비를 부담하지 못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파산하는 가정을 자주 보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옵션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약간의 자기 공제액(deduction)을 제외하면 진료비의 거의 대부분을 보험에서 부담해주는 미국이나 독일의 의료보험제도와 비교된다.
미국의 의료보장제도가 아무리 어설프고 사각지대가 많아보여도 그것이 인간의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는 미국 사회의 가치관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적어도 수술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험에 들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또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수술해 주지 않는 경우는 없다. 치료가 우선이고 청구는 그 다음이다. 이에 비해 수술비가 없어서 고통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제로 들려오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노인의료비 부담이 급증하고 의료 서비스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우리 건보제도의 자랑인 '저비용 고효율 체제'가 위협 받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근거 없는 낙관론보다는 객관적 현실 인식이 더 필요한 때다.
허구생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장>
재미있는 것은 미국의 의료보장이 이제야 겨우 우리 건강보험 수준을 따라왔다느니 심지어는 이번 개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것보다 뒤떨어진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것이 공공보험이 아닌 민간보험 중심으로 운영되므로 이윤과 영리를 추구하는 시장 상황에서 자유롭지 않고,강제가입 조항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미가입자가 존재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리 의료제도에 대한 자부심이라고 보면 그만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상황인식이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니다. 낙관론자들이 가진 인식 오류는 두 가지 방향에서 나온다. 하나는 미국이라는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건강보험제도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건강보험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보험료가 저렴하고 의료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연간 평균 보험료가 120만원으로 미국의 10분의 1도 안 되고 단돈 1만원이면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거기에 진료비도 상대적으로 싸 감기 치료에 60만원이 넘게 든다는 미국에 비하면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건강보험제도가 가진 장점은 거기까지다.
우선 저소득층에게 정부가 진료비를 지급하는 의료급여 대상자는 전체 국민의 3%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미국은 전체의 15%가 메디케이드라는 무상 의료서비스의 대상이고 노인 및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 보험인 메디케어 수혜자가 19%에 이른다. 이것이 우리나라 사회보장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초라한 성적표다.
또한 미국이 이번 개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5%의 미가입자가 남을 것이라는 조롱도 우리의 건보 사각지대 실상을 알면 하지 못할 말이다. 건강보험료를 6개월 이상 체납,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집이 165만가구에 이른다. 대충 계산해도 300만명을 넘는다. 비율로 따지면 개혁 이전 미국의 보험 미가입자 규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보험의 경우 본인 부담료가 지나치게 높다. 예컨대 최근 암환자 본인 부담률이 5%로 낮아졌다지만 실제 의료비 부담은 수천만원을 넘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보험적용이 안 되는 질병과 치료법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억원에 이르는 진료비를 부담하지 못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파산하는 가정을 자주 보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옵션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약간의 자기 공제액(deduction)을 제외하면 진료비의 거의 대부분을 보험에서 부담해주는 미국이나 독일의 의료보험제도와 비교된다.
미국의 의료보장제도가 아무리 어설프고 사각지대가 많아보여도 그것이 인간의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는 미국 사회의 가치관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적어도 수술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험에 들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또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수술해 주지 않는 경우는 없다. 치료가 우선이고 청구는 그 다음이다. 이에 비해 수술비가 없어서 고통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제로 들려오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노인의료비 부담이 급증하고 의료 서비스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우리 건보제도의 자랑인 '저비용 고효율 체제'가 위협 받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근거 없는 낙관론보다는 객관적 현실 인식이 더 필요한 때다.
허구생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