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TF가 '천덕꾸러기'라고? 회사 살린 일등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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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일류 만드는 조직
태스크포스(TF)는 흔한 조직이다. 언제부터인가 무슨 일이 터지면 유행처럼 TF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물론 기업에도 TF라 부르지 않더라도 특수한 임무를 부여 받은 조직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다 보니 TF가 땜빵용 조직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고 'TF 스트레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어떤 TF는 성공하고 어떤 것은 왜 실패하는 것일까.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집권 초기 궁지에 몰아넣었던 TF와 삼성의 세계 TV시장 장악에 일등공신이었던 TF를 통해 그 실마리를 찾아본다.
◆1990년대 미국 최악의 TF '힐러리 팀'
1993년 클린턴 대통령은 고민에 빠졌다. '전국민 의료보험 시행'이라는 민주당의 꿈을 실현할 TF 책임자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가장 믿을 만한 정치적 동반자를 택했다.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당시 로이드 벤슨 재무장관은 "해고할 수 없는 사람을 책임자로 임명하면 안된다"며 반대했지만 임명을 강행했다. 몇 달 뒤 힐러리팀은 이른바 '힐러리 케어'로 불리는 의료보험 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꿈은 악몽으로 돌아왔다.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의원들조차 법안에 반대했다.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민주당 중진 의원들까지 철저히 배제했기 때문이다. 또 힐러리팀의 독선과 비밀주의는 보험업계,중소기업 고용주까지 모두 적으로 돌려세웠다. 국민들은 병원 선택권이 없어질까 불안해 했다. 의회 · 정부 · 국민과의 소통에 모두 실패한 것이다.
결국 민주당은 법안을 상정조차 못했다. 클린턴 지지율은 집권 초기였음에도 30%포인트 급락했다.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을 임명해 만든 TF가 클린턴에게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준 셈이다.
◆신(神)을 이긴 삼성 TV 일류화추진위원회
2004년 어느 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300여명의 직원들은 인사명령을 통보받았다.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던 반도체사업부를 떠나 2류 취급도 못 받던 TV사업부로 가라는 것이었다. 당시 삼성은 반도체 연구원 한 명이 옮길 때도 공장장인 이윤우 사장(현 부회장)의 특별 결재를 받아야 할 만큼 반도체에 집중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충격은 더 컸다.
인사명령은 'TV 일류화추진위원회'라는 TF가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아날로그 시대에는 우리가 출발이 늦어서 졌지만,디지털시대는 출발선이 같기 때문에 우리도 1등을 할 수 있다"며 TF 구성을 지시했다. 그리고 반도체 인력을 대거 TV쪽으로 옮겼다.
처음 직원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삼성 엔지니어들에게 세계시장에서 TV왕국을 구축하고 있던 소니는 신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실제 소니제품이 100만원에 팔리면 삼성제품은 68만원에 팔릴 때였다. "소니를 넘어서라니…."
어쩔 수 없이 시작했지만 직원들은 점차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대형화 · 디자인 · 반도체 성능으로 승부를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했다. 소니를 넘어서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반도체 사업부에서 넘어 온 수백 명의 연구원들은 대형 TV에 가장 적합한 칩을 개발했다. 인간의 뇌처럼 TV의 모든 성능을 조정하는 크리스탈 엔진 칩이었다. LCD 사업부는 최고의 패널을 만들어 대형화를 뒷받침했다. 디자인팀은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줄 수 있는 디자인을 고안해 냈다.
의사결정은 다른 조직과 달리 빠르게 진행됐다. 1위는 시장변화의 속도를 따라 잡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 TV 역사를 새롭게 쓴 '보르도'는 이렇게 탄생했다. 2006년 삼성은 소니를 누르고 세계시장 1위에 등극했다.
윤부근 사장은 "회장의 의지가 힘을 발휘했고, 그 일을 내 일이라고 생각한 경영진과 직원들의 신념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성과였다"고 회고했다. 리더의 비전,이를 공유한 삼성전자는 물론 관계사들의 적극적 지원이 이뤄낸 합작품이라는 얘기였다. 이 조직은 2008년 해체됐지만 조직문화는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두산 CFP팀도 성공의 모델
두산그룹의 인수 · 합병(M&A)을 이끌고 있는 CFP(Corporate Finance Project)팀과 1990년대 후반 소니의 컴퓨터 사업을 담당했던 바이오사업부도 성공적 모델로 꼽힌다. 두 조직은 상설조직이긴 하지만 특수한 미션을 부여받고 TF처럼 움직였다.
CFP팀은 1990년대 두산그룹 구조조정에 조언을 해주던 맥킨지컨설팅 직원들과 두산 직원들의 연합군이었다. 이 팀은 박용만 ㈜두산 회장이 공식석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팀"이라고 말 할 정도로 오너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성공적 M&A를 이끌었다. 재계는 "전문성과 스피드,실행력에서 국내 어떤 그룹도 따라갈 수 없는 팀"이라고 평가한다.
1990년대 중반 출범한 소니의 바이오사업부 목표는 "다른 기업이 상상하지 못한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조직은 업무가 수평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다른 컴퓨터 회사와 달리 기획에서 설계 · 영업 · 광고까지 모두 한 부서에서 해결했다. 다른 사업부는 이 팀을 적극 지원했다. 그 결과 소니가 만든 바이오 컴퓨터는 세계 시장을 제패했다. 빠른 의사결정과 기술력을 갖춘 전문가들,회사의 지원 등이 'PC=바이오'라는 공식을 만들어낸 셈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