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보수 한도가 40억원인데 작년에 18억원밖에 안 썼네요. 잘 먹고 건강해야 돈을 버는 겁니다. 한도를 다 쓰고 성과를 내세요. 사외이사에게도 한 10억원 정도의 인센티브를 주시란 말입니다. "

지난 26일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우리금융지주 주주총회장.이사보수 한도 안건이 상정되자 한 주주가 발언권을 얻어 이렇게 말했다. 다른 주주들은 폭소를 터뜨리면서 "옳소"라고 외쳤다. 안건은 무사통과됐다. 다른 안건도 마찬가지였다. 안건이 상정되자 마자 "의장!"이라고 외쳐 발언권을 얻은 사람이 "찬성한다"고 말했다. 역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상권 우리은행 노조위원장이 발언권을 얻었다. "작년에 임금 동결과 급여 5% 반납 등 직원들의 희생이 있었는데 1조원대 순익에도 불구하고 성과급이 없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의 발언이 5분 정도 진행되자 의장을 맡은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시간이 별로 없으니 짧게 해달라"며 말을 막았다.

30일 열린 외환은행의 주총도 비슷했다. 외국계 은행이라 좀 다르려니 했건만,아니었다. 안건이 상정되면 여기저기서 "찬성한다"는 고함이 터졌다. 반면 시민단체인 투기자본 감시센터 관계자들이 재무제표에 대해 "법인세 환급과 보고펀드 투자에 대한 펀드 수수료가 부당하다"고 질의하자,리처드 웨커 행장은 "주총 보고 안건과 관련되지 않은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고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

안건에 대해 '무조건 찬성'을 외친 사람 중 상당수는 은행 측이 동원한 이른바 '주총꾼'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들은 민감한 사안이나 비판적 발언이 나올 때마다 경영진 편을 들어 안건을 통과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난 26일 열린 KB금융지주 주총에서도 이들은 "힘내라,모기소리(외부압력) 때문에 강정원 행장 힘들었겠다"식의 발언으로 원활한 주총을 도왔다.

물론 이들도 엄연한 주주다. 따라서 발언권을 얻어 자기 의견을 밝히는 걸 막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들에게는 넉넉하게 발언시간을 주면서도,예민한 사안을 따지고 드는 다른 주주들의 발언을 제지하는 의장의 진행 태도는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뭔가 숨기고 싶은 게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식이라면 은행들이 외치는 글로벌화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재형 경제부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