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쳤어,정말 미쳤어~."

지난 주말 오후 9시 홈플러스 서울 방학점.장내 스피커를 통해 가수 손담비의 노래 '미쳤어'가 흘러나오자 홈플러스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약속이나 한듯 환하게 웃는다. 몇몇은 아예 노랫가락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기도 한다.

'미쳤어'는 이 점포의 하루 매출 목표인 2억5000만원을 달성한 순간 내보내는 일종의 자축곡."오늘도 미친 듯이 일한 덕분에 목표를 달성했다"는 의미를 담은 직원들만의 암호다.
홈에버 시절이던 2년 전 이맘때의 하루 매출(1억7000만원)보다 50%가량 높은 성과지만 올 들어 방학점 직원들이 이 노래를 듣지 않고 퇴근한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 점포뿐이 아니다. 홈에버에서 홈플러스로 간판을 바꿔 단 나머지 31개 점포에서도 손담비의 '흘러간 유행가'는 거의 매일 울려퍼진다.

대규모 적자에 허덕이던 32개 홈플러스테스코(옛 홈에버 운영회사) 점포들이 2008년 5월 홈플러스에 인수된 지 1년6개월 만에 부활했다. 인수 전에 비해 하루 평균 매출이 37.7% 늘면서 지난 회계연도(2009년 3월~2010년 2월)에 750억원의 흑자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경기 침체로 기존 대형마트들이 정체 상태에 빠졌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성장세다. 그것도 '510일 파업'으로 대변되는 극심한 노사 대립과 비효율적인 점포 운영 탓에 2007년 이후 2년 연속 15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던 '문제아'들이 거둔 성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이승한 홈플러스그룹 회장(사진)이 1999년 삼성테스코 설립 당시 대표이사를 맡아 3년 만에 홈플러스를 업계 꼴찌(12위)에서 2위로 성장시킨 데 이은 두 번째 성과라는 평가다.

이 회장은 "인수 직후 4개월가량 진행한 '옛 홈에버 변신 작전'이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덕분에 세계적으로도 드문 성장세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홈플러스가 펼친 첫 번째 작전은 장기 파업 탓에 무너질 대로 무너진 노사 간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이 회장은 "'당근'부터 꺼내들어 장기 파업을 주도했던 비정규직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동시에 임금도 40%가량 올려줬다"고 말했다. 점포별로 직원 전용식당과 휴식공간도 마련해주고 오랜 파업으로 인해 '감'이 떨어진 임직원들의 업무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직원들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성공의 또 다른 비결은 점포 혁신이다. 옛 홈에버 점포들이 있는 지역의 상권을 분석,각각의 특색에 맞게 점포를 완전히 뜯어고쳤다. 예컨대 방학점의 경우 이 지역에 자녀를 둔 30~40대가 많다는 점에 착안,45%에 달했던 의류 비중을 20% 수준으로 낮추는 대신 그 자리를 신선식품 가전제품 문구 · 완구 등으로 채웠다. 장기 재고는 '아름다운 재단' 등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83개에 달하는 기존 홈플러스와의 공동구매를 통해 판매 단가를 낮춘 것도 고객을 끌어모으는 데 한몫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점포 수가 적은 홈에버는 '바잉 파워'가 약한 데다 구매 노하우도 없었던 탓에 똑같은 제품을 가장 비싸게 매입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신선식품의 경우 최고 30%나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작년 상반기부터 매출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해 32개 옛 홈에버 점포의 고객 수는 인수 후 1년여 만에 22.5% 늘었고,고객 1인당 구매액도 12.5% 상승했다.

홈플러스는 현재 83개 매장은 삼성테스코에서,옛 홈에버 매장 32곳은 홈플러스테스코에서 관리하고 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