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사는 직장인 조영현(34) 씨는 아침 출근길에 나설 때마다 자가용을 눈앞에 두고 고민한다. 지하철과 버스를 서너 번 갈아타며 직장으로 향할지, 아니면 조금은 막히더라도 차를 몰고 나설지. 고민하던 조 씨는 자동차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ℓ당 2000원에 가까운 동네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표가 떠올라서다.

31일 한국석유공사의 유가정보사이트인 오피넷에 따르면 휘발유(보통 기준)의 전국 평균 가격은 ℓ당 1719.05원에 달한다. 서울 강남, 영등포 등 일부 지역 주유소에서는 ℓ당 198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휘발유의 전국 평균 가격이 ℓ당 1700원을 넘어선 것은 17개월만으로, 지난해 초의 1300원대에 비하면 30% 이상이 올랐다.

지난해 5만원을 지불하면 약 38ℓ를 주유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채 30ℓ도 채울 수 없게 된 셈이다. 도로조건을 무시하고 연비효율이 ℓ당 12.0km인 현대자동차 '신형 쏘나타(2000cc·자동변속기)'를 운행할 경우 5만원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는 약 360km에 불과하다. 서울~부산까지의 고속도로 편도 길이인 약 420km를 완주하려면 적어도 6만원어치는 주유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속도로 통행료까지 포함하면 김포공항~김해공항 사이를 운행하는 항공기(편도 5만2400원·저가항공사 기준)가 훨씬 싸다.

대중교통만큼 저렴한 수단이 없지만, 불가피하게 직접 차를 몰고 나서야 할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하면 기름값을 최대한 아낄 수 있을까'를 두고 자신만의 비법을 나누는 데 한창이다. 한 수입차업체가 국내에서 진행한 '연비왕 대회'에서는 공인연비 13.9km/ℓ의 2000cc 중형차로 ℓ당 49km를 주행하는 진기록이 나오기도 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인내는 돈이다'…年 80만원까지 절약

기름값을 아끼는 첫 번째 수단은 '연비운전'이다. 무리한 과속이나 급출발을 삼가고 정속주행을 의식하다보면 기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차량의 흐름을 차분히 읽어가며 가속과 제동 횟수를 가급적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인내심이 관건이다. 출발 후 5초 동안 시속 20km까지 천천히 가속하고, 엔진회전수 2000~2500RPM 사이에서 시속 60~80km로 정속주행하면 연료를 최대 6% 아낄 수 있다.

변속기의 중립(N)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차가 정체상태로 10초 이상 멈춰있을 때 기어를 중립에 놓으면 기름을 20% 이상 아낄 수 있다는 통계도 있다. 변속기를 중립에 두면 혹시라도 차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는 경우도 있다.하지만 독일 폭스바겐 등 일부 자동차업체의 엔지니어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중립 사용을 권하고 있다.

정차 중에는 잠시 시동을 끄는 방법도 있다. 공회전을 5분 하게 되면 1km이상 주행 할 수 있는 연료가 낭비된다. 현대차 '아반떼 하이브리드 LPi' 등 일부 차량은 정차 중 공회전을 막기 위해 자동으로 시동을 껐다 키는 ’오토 스톱 앤 고(Auto Stop & Go)' 시스템을 장착해 연비향상을 도모했다. 굳이 이런 편의장비가 없어도 운전자의 노력에 따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절약되는 금액은 연간 최대 80만원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 사이의 정설이다.

◆'연비왕' 수동차…佛 점유율 80% 넘어

새 차를 사기 전이라면 수동차량의 구입도 고려해 볼 만 하다. 일반적으로 같은 차라도 수동모델이 자동변속기보다 공인연비가 좋다. '경차'라면 금상첨화다. 국내에서 수동변속 차량의 판매량은 1% 남짓에 불과하지만, 자동변속기에 비해 20%가량 연비가 절약돼 프랑스의 경우 수동변속 차량의 비율이 81%를 넘을 정도로 인기다. 미국이나 일본도 수동차가 40~5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기아자동차가 지난달 출시한 경차 '모닝 에코플러스'의 수동모델은 연비가 21.2km/ℓ로 국내 최고 수준이다. GM대우 경차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의 수동모델 연비도 21km/ℓ에 달한다. 수동모델의 경우 1500RPM 정도의 낮은 엔진회전수 대역에서 단수를 올려가며 운전하면 엔진의 급격한 회전을 막아줘 연료소비를 줄일 수 있다. 높은 연비의 하이브리드차나 기름값이 아예 안 드는 전기차에도 관심이 가지만, 높은 초기 구입가격을 생각하면 유류비 절약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아직까지는 수동 경차가 아닐까.

◆소모품은 때 맞춰 교환…차체무게도 줄여야

배터리, 연료필터 등 자동차 소모품의 적시 교환도 중요하다. 특히 개당 수천원에 불과한 점화플러그(스파크플러그)의 교환시기를 놓치면 엔진 연소 장애로 최대 10%가량 연료 소모량이 늘어난다. 타이어의 공기압도 연료 소모량에 영향을 미친다. 정기 점검을 통해 소모부품을 교체해 주고 차량을 손보면 기름값 절약은 물론, 안전운전에도 도움이 된다.

무분별한 외관 튜닝은 연료 낭비의 지름길이다. 차량의 무게가 늘어나 연료 소비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동차 생산업체가 차체 경량화에 매진하고 있는데 굳이 무게를 올릴 필요는 없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가장 가벼운 차는 기아차 뉴 모닝으로 849kg에 불과하다. 가장 무거운 차는 2855㎏의 마이바흐62 제플린(5.3km/ℓ)이다. 두 차의 연비효율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배기량 외에도 차체 무게차이가 한 몫 거들었기 때문이다. 당장 트렁크에 가득한 짐을 덜어내도 제법 효과를 볼 수 있다. 차체를 한 층 가볍게 하기 위해서는 기름을 한 번에 가득 채우기보다는 조금씩 나눠서 주유하는 게 좋다.

아무리 기름값을 아끼려 해도 연료가 다 떨어지면 주유소를 찾아야 한다. 신용카드를 쓴다면 주유할인 혜택을 따져볼 만하다. 삼성카드가 최근 출시한 '카앤모아카드'는 정유사에 관계없이 모든 주유소에서 ℓ당 최대 100원까지 할인받을 수 있다. 하나SK카드와 현대카드, KB카드도 전국 모든 주유소에서 ℓ당 최대 60원의 할인혜택을 제공한다. 주유소를 찾기 전에는 최근 일부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에서 지원하는 주유소별 가격비교 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