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상징 캐릭터인 '해치'가 길을 잃었다. 2008년부터 수억원을 들여 개발하고 마케팅했지만 해외 관광객 유치,공공 캐릭터 산업을 통한 경제 활성화라는 당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잊혀져가고 있다. 서울시내 해치 캐릭터상품숍은 적자에 허덕이고 서울의 상징 택시를 표방한 '해치 택시'도 택시업체들의 외면으로 출범 초기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매장 파리 날리고…택시 재고 쌓이고

서울시는 작년 9월 디자인 전문업체인 위즈크리에이티브와 1 대 1 합작으로 해치 캐릭터상품숍인 '해치서울'을 선보였다.

인형 문구 생활소품 등 133개 품목 388종을 판매하는 해치서울의 점포 수는 1년여 만에 23개로 늘었지만 매출이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적자에 빠졌다.

개장 직후인 작년 10월 4811만원에 달했던 해치 캐릭터상품 월매출은 지난 2월 2354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서울의 '옐로 캡(뉴욕을 상징하는 택시)'을 목표로 서울시가 지난달부터 도입키로 한 해치택시사업도 기대치에 못미치고 있다. 작년 10월 서울시는 택시 전체를 '꽃담황토색'으로 입힌 해치 택시만 신규 등록을 허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가 최근 계획을 연기했다.

택시업체들이 "색상이 촌스러워 중고차로 되팔기 어렵다"는 이유로 구입을 꺼리고 있어서다. 현대 · 기아자동차가 이달부터 생산과 판매를 시작했지만 재고만 쌓이고 있다. 월평균 700여대의 택시를 판매하는 현대 · 기아차의 해치 택시 판매 대수는 100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르노삼성과 GM대우는 생산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관계자는 "서울시가 업계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택시 디자인을 내놓고 예산 지원 없이 도입을 서두르면서 자동차업계가 딜레마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제2의 왕범이 전락 우려도


전문가들은 해치가 1998년 등장했다 10년 만에 자취를 감춘 '왕범이'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88서울올림픽 공식 마스코트인 호돌이를 본뜬 서울시의 상징 캐릭터 왕범이는 개발과 홍보 등에 총 7억여원 이상이 투입됐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폐기됐다.

이병민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도시의 공공캐릭터는 어린아이도 알고 있을 정도의 대중성과 공감대가 필수적인데 해치엔 이 같은 요소가 없다"며 "시 주도로 캐릭터를 정하고 상품화에 나서는 '원소스 멀티유즈'가 아니라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멀티소스 멀티유즈' 전략을 택하지 않는 한 뉴욕의 '빅애플',베를린의 '버디베어' 같은 명성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프랑스 리옹의 상징물인 라이언(Lion)은 2300여명의 시민 후원단의 지원을 받고 있다"며 "다양한 기업과 협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