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화두,인도,중국,대항해 시대.'

올 들어 삼성그룹 40여개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 경청한 강의 주제들이다. 매주 수요일 회의를 갖는 삼성 사장단은 한 달에 한두 번은 외부 강사를 초청해 강의를 듣는다. 단순한 교양강좌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읽고 영감을 얻어가기 위해서다.

◆이 회장 복귀 후 첫 강의는 프레임 개혁

올해 주제는 작년과 달리 '새로운 미래준비,글로벌시장을 향한 도전'과 관련된 것들이 주를 이뤘다. 31일 이건희 회장 복귀 후 열린 첫 사장단 회의 주제는 '인식의 틀'을 뜻하는 '프레임'이었다. 강사로는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가 나섰다. 이 회장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최 교수는 삼성이 미래를 위해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어떤 프레임을 뛰어넘어야 할지에 대해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삼성이라는 조직,그리고 삼성 CEO 하면 굉장히 차갑고 매정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사물을 공정하게 보려는 페어니스(fairness) 프레임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최 교수는 "이 프레임은 '능력 있는 사람은 인간성이 나쁠 것이다' 또는 '가난한 사람은 정직하고 인간적이다'라는 신념을 갖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런 프레임이 때로는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삼성이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이런 프레임을 바꿔줄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에 앞서 삼성 사장단은 지난 2월17일 회의에서는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로부터 '대항해 시대'를 주제로 강의를 들었다. 주 교수는 "바다를 장악한 나라는 근대국가로 성장했고 그러지 못한 나라는 도태됐다"며 국가건 기업이건 세계와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지난 2월10일에는 올해 한국과 CEPA(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 발효가 예정된 인도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김찬완 한국외대 교수는 "인도는 인구 12억명에 매년 9% 성장세를 보이는 신흥시장으로 IT부문에서도 상당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와이브로 시장 규모만 5조원에 달해 삼성이 눈여겨볼 만한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인도시장 개척을 위해서는 삼성과 인도가 함께 성장하는 윈-윈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삼성 사장단 새 공부 주제는 세상 읽기

지난 1월13일 올해 첫 번째 강사로 나선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2010년 사회적 화두'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방책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사회는 '내치의 늪'에서 벗어나 문명의 바다로 나가야 한다"며 "삼성을 비롯한 기업들은 3적(국적,호적,전적)을 버릴 것을 주문했다. 중화권에 속한 호적과 한국이라는 국적,하드웨어 중심의 전공을 뜻하는 전적을 버려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를 통해 한국국민을 세계시민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한국사회에 던져진 숙제이며 삼성이 앞장서서 이 과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또 "그동안 한국사회가 이념전쟁으로 인해 지나치게 사회의 에너지를 소모했다"며 "이념투쟁에서 이념공존의 시대로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한국사회는 모든 이슈에 대해 내치의 늪에 빠졌다"고 진단하고 "문명의 바다로 나가야 한다"고도 말했다.

삼성 관계자는 "사장단회의 강의가 세상의 흐름을 읽을 뿐 아니라 미래사업을 준비하는 데도 도움을 줘야 한다고 보고 강사를 초청한다"고 말했다. 삼성 사장단회의는 외부 강의가 없을 경우 그룹의 현안을 논의하거나 작년 삼성전자 TV사업부 윤부근 사장처럼 모범사례를 공유하기도 한다. 삼성그룹은 이 회장 복귀 후에도 삼성 사장단회의를 지금처럼 운영할 계획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