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잡한 서울 지하철 안.30대 직장인 김모씨가 휴대폰 속 3D 동영상에 푹 빠져 있다. 휴대폰에 적용된 '입체영상' 기술 덕에 전용 안경 없이도 아바타 같은 3D 영화를 비교적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 갑자기 거래처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다른 사람이 엿들으면 안 되는 중요한 계약건이다. 하지만 통화 내용이 새나갈 염려는 없다. '지향성 스피커'가 부착돼 있어 상대방 얘기는 오직 김씨 귀에만 들린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접속이 가능(유비쿼터스)한 것은 물론 24시간 전원 공급이 가능한 '태양전지'와 축전기가 장착돼 있어 배터리 충전도 거의 필요 없다.

스마트폰보다 더 똑똑한 차세대 휴대폰의 청사진이다. 1일 개최된 '제1회 으뜸기술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지식경제부 장관상)을 받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김종대 NT(나노기술)융합부품연구부장(56)의'유비쿼터스 단말기용 핵심 부품'을 활용하면 가능한 얘기다.

기술 개발을 주도한 김 부장은 "이미 국내 17개 기업에 기술 이전을 통해 상용화에 필요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르면 2~3년 안에 현실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2006년 3월부터 4년간 민 · 관 합동 연구팀을 이끌면서 나노기술을 적용,시각센서(입체영상) 음향센서(지향성 스피커) 환경센서 등 인간의 감각정보를 인지해 처리할 수 있는 실감서비스형 유비쿼터스 단말기용 부품을 개발했다.

또 인지된 정보를 처리하고 표현할 수 있는 다용도칩(신호처리칩)과 인터페이스칩(센서에 들어오는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꿔주는 칩),24시간 전원을 공급하는 자가충전 배터리 기술도 개발했다. 예컨대 입체영상의 경우 사람의 눈 역할을 하는 양안 입체 카메라가 아날로그 시각정보를 인식하면 인터페이스칩과 다용도칩을 통해 디지털 신호로 바꾼 뒤 이를 3D 디스플레이로 실감나게 보여주는 식이다.

기술 개발에는 지식경제부 R&D(연구개발) 예산 368억원과 민간기업의 연구비 124억원 등 총 492억원의 만만치 않은 금액이 투입됐다. 하지만 그만큼 성과가 뛰어나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평가다. 실제 이번에 개발된 기술은 국내 특허 43건,해외 특허 5건을 취득할 정도로 독창성을 인정받았고 전문 학술지 게재 건수도 26건에 달한다.

이뿐 아니다. SK텔레콤 엠텍비젼 일진소재 등 17개사가 이번에 개발된 기술을 이전받아 현재 상용화 과정을 밟고 있다. 지금까지 기술 이전으로 받은 수수료만 2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상용화가 성공할 경우 추가로 막대한 로열티 수입까지 올릴 수 있다. 김 부장은 "이번에 개발된 기술은 요즘 인기 스마트폰으로 꼽히는 아이폰이나 삼성폰에 없는 기능"이라며 "상용화될 경우 휴대폰 판매가격의 3~5% 정도를 로열티 수입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으뜸기술상 심사위원들은 이번에 개발된 기술이 국내 휴대폰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감형 휴대폰 부품' 시장은 아직 형성조차 돼 있지 않은 미성숙 단계지만 2017년에는 세계 시장 규모가 800억달러에 달할 만큼 커질 것이란 점에서다.

김 부장이 기술 개발에 착수한 것은 2005년.IT(정보기술)와 NT의 결합 등 융 · 복합이야말로 고부가가치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름길이란 생각에서다.

그는 "과거엔 자동차 만드는 사람은 자동차만 생각하고,IT 하는 사람은 IT만 생각했지만 요즘은 IT 없는 자동차를 생각하기 힘들지 않으냐"며 "앞으로 R&D의 핵심은 융 · 복합"이라고 말했다. 융 · 복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자기 분야만 생각하지 말고 낯선 분야로 관심을 넓히는 개방적 자세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김 부장은 개인 특허만 150여개 정도 가지고 있는 '특허 박사'다. 작년 11월 특허청이 뽑은 '국내 특허 보유자 톱 10'중 6위에 올랐다. 2008년에는 대한전자공학회가 선정하는 기술 분야 해동상을 받았다. 이 상은 매년 한 명의 기술 분야 유공자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올해의 기술인상'에 해당한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