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탄생된 유로화에 대한 평가는 '유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과'와 '21세기 최악의 착각'으로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리스 재정위기 사태가 터진 뒤 유로화는 이런 상반된 양면성을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유로존 16개국에서 통용 중인 유로화는 물물교환의 매개와 가치척도 표시 등 화폐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 중이다. 반면 유로화는 단일통화의 실현이란 경제적 목적과 유럽 통합이라는 정치적 열망이 서로 뒤틀리게 얽혀들면서 자유경제체제에서 심각한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그리스 사태는 유로존 내 단 한 곳에서라도 문제가 발생할 때 유로화의 독립성과 통화가치가 얼마나 순식간에 훼손되기 쉬운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물론 유로존의 모든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화 가치 안정'이란 목표 실현을 위해 회원국들의 온갖 정치적 압력 속에서도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해 왔다. 유로화 도입 후 유로존 내 연 평균 물가상승률은 2%대로 비교적 고르게 유지됐고,미국 달러를 대체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높은 국제적 위상도 얻었다.

하지만 그리스의 재정적자가 지난해 GDP 대비 12.7%까지 불어나고 국가 파산위기까지 거론되면서,16개 회원국들 사이에서 유로화 안정을 위해 일관된 통화정책 가이드라인을 구성하려던 ECB의 오랜 노력은 난관에 봉착했다. 또 경제규모와 특징이 각각 다른 16개 회원국의 중앙은행 총재들이 한 자리에 앉아 있는 ECB 이사회 체제 또한 ECB의 시도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유럽이 5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경제통합을 시도하고 유로화란 단일통화까지 도입한 것은 결국 '하나의 유럽을 위한 하나의 통화'란 궁극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세계 1,2차 대전을 겪은 뒤 유럽 대륙이 만신창이가 되면서 "유럽의 부흥을 위해선 각국이 서로 손을 꼭 맞잡아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그리스에 대해 "유로존에서 단 한 국가라도 낙오된다면 유로존의 도입 취지 자체가 무색해진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런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유로화를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선 유로존 회원국들의 경제정책이 무조건 하나로 통일돼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쳐버려야 한다. '화폐 단일화'와 '유럽의 정치적 통합'이라는 서로 성격이 전혀 다른 사안을 억지로 한데 묶으려 했기 때문에 유로화 가치의 불안정은 더욱 심해졌다. 지금으로선 유로화로 하나된 유럽을 이끌어내겠다는 거대 목표에만 당장 매달리기보다는 유로화를 사용하는 개별 주체들의 재무건전성을 높이는 게 훨씬 중요하다. 자본주의는 통화의 안정성이 뒷받침돼야만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평범하고도 중요한 진리를 유로화는 지금 보여주고 있다.

정리=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이 글은 미국 아틀라스 경제연구재단의 주디 셸턴 선임연구원이 월스트리트저널에 '단일 통화는 '하나의 유럽'을 요구하지 않는다(One Currency Doesn't Require 'One Europe')'란 제목으로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