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러시아 작가 체르니셰프스키의 대작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다보면 작품 중간중간에 여러 페이지가 공란으로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검열로 삭제된 부분이다. 19세기 출판 문화의 붐에 비견되는 인터넷 혁명이 무르익고 있는 오늘날에도 제정러시아 시대와 유사한 '검열'과 '삭제'가 적지 않다. 편리한 인터넷시대의 그림자다.

블룸버그통신과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 등 주요 외신들은 최근 인터넷 검색 차단과 검열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크고 작은 논쟁과 분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거대한 '인터넷 만리장성'을 쌓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연합(EU) 역시 범유럽 차원의 '그린댐(음란물 차단 프로그램)' 짓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31일 "중국이 세계 최대 검색업체인 구글과의 마찰을 계기로 '인터넷 만리장성'을 구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구글이 중국 정부의 정보 검열을 이유로 홍콩 사이트로 우회 접속을 시도한 이후,중국 정부가 강력한 방화벽을 구축하면서 제대로 검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국 본토에서 구글 검색을 할 경우,'베이징올림픽'등 특정 검색어가 포함되면 에러 메시지가 뜬다. '개'나 '집' 같은 일반명사 검색에서도 오류가 발생했다. '티베트'나 '달라이 라마' 같은 전통적인 금기어는 물론 미국이 지원하고 있는 '자유아시아방송(RFA)'의 검색을 막기 위해 'rfa'가 들어간 단어의 검색도 제한된다.

구글은 중국 정부의 검색 방해로 트래픽이 급감하면서 광고주 이탈이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차오쥔보 아이리서치 수석애널리스트는 "구글 중국 사이트의 클릭 수는 구글이 홍콩 사이트로 서비스를 옮기기 전보다 30~50%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국 내 트래픽이 빠르게 감소하면서 구글 광고주들은 중국의 토종 검색엔진인 바이두 등 다른 검색업체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외국 업체에 대한 중국의 검열은 구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AP통신은 이날 "중국에 파견된 외신기자들의 '야후' 이메일이 해킹당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중국 내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성향의 블로그들도 거의 자취를 감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 대륙에서 검열 등을 둘러싸고 마찰음이 커지는 가운데 유럽에서도 범유럽 차원에서 아동 포르노 사이트에 대해 강제적으로 접속을 차단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체칠라 말름스트룀 EU집행위 내무집행위원 주도로 EU 차원에서 아동 포르노물에 대한 접속을 강제적으로 차단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아동 보호를 명분으로 내건 중국의 '그린댐' 정책에 대해 "인터넷 자유를 명백하게 침해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던 EU가 1년 만에 중국과 똑같은 '아동 보호'를 이유로 사이트 감독에 나선 것이다. EU집행위는 또 아동 포르노물 제작자에게 5~10년형의 중형을 구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특히 EU의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독일과 아일랜드에서 가톨릭 성직자의 아동 성추문 사건이 발생하면서 더욱 힘을 받고 있다. 그러나 독일 등지에서는 강제 차단 조치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반대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올리버 쥐메 독일인터넷산업협회 부회장은 "EU가 네티즌의 접근을 차단하는 블랙리스트를 만들더라도 아동 포르노업자들은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EU가 아동 유해물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 정치 · 사회적 콘텐츠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독일 녹색당 소속 얀 필리프 알브레히트 의원은 "아동 포르노 사이트 차단 조치는 앞으로 각국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사이트들에 대한 탄압과 검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