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ㆍ'개인의 취향'ㆍ'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금기의 영역이 깨지고 있다.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는 오랜 기간 국내 드라마와 영화에서 접하기 힘든 소재였다.

특히 지상파 TV 드라마에서는 절대 다룰 일이 없을 것만 같았던 영역이다.

하지만 2010년 봄, 안방극장에는 동성애자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선보이기 시작했고, 이보다 몇 년 앞서 동성애자에게 '문호'를 개방한 한국영화는 이제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인 상업영화까지 선보이며 출입문을 더 활짝 열었다.

드라마, 영화 관계자들은 "이제 좀더 다양한 사랑을 그릴 때가 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상파 드라마, 동성애를 품다
오후 10시 심야이긴 하지만 지상파 TV 주말극에서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룬다.

지난달 20일 첫선을 보인 SBS TV '인생은 아름다워'다.

작가 김수현이 집필하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주인공 가족의 첫째 아들인 의사 태섭(송창의 분)은 동성애자로, 그의 연인은 사진작가 경수(이상우)다.

경수는 뒤늦게 커밍아웃한 탓에 이미 결혼으로 아이까지 얻었지만, 이제라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이혼하고 태섭과 사랑을 나눈다.

태섭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아직 가족도 모르지만, 그도 조만간 커밍아웃할 전망이다.

드라마는 태섭과 경수의 사랑을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다루며 동성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도전하고자 한다.

국내 드라마에서 동성애를 이렇게 정면으로 다루기는 1999년 노희경 작가 - 표민수 PD 콤비가 실험적으로 선보였던 KBS 2TV 특집극 '슬픈유혹' 정도다.

당시 김갑수와 주진모가 펼친 동성애 연기는 충격과 함께 화제를 모았지만, 11년 전에 선보인 이 드라마는 주인공들이 스스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후 2003년에는 김수현 작가가 SBS TV 주말극 '완전한 사랑'에서 실제 동성애자인 탤런트 홍석천을 극중에서도 동성애자로 캐스팅해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동성애자 캐릭터만 등장할 뿐 그의 사랑은 없었다.

김 작가는 그로부터 7년 후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동성애자 커플이 자신들의 존재와 사랑을 가족과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50부인 만큼 이 이야기는 앞으로 최소한 6개월 넘게 진행, 발전될 예정이다.

지난달 31일 첫선을 보인 MBC TV '개인의 취향'은 게이 친구를 갖고 싶어하는 여성 박개인(손예진)이 우연히 알게 된 전진호(이민호)가 게이라고 오해한 끝에 그와 함께 살기로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전진호는 실제 게이는 아니지만, 드라마는 박개인의 착각에서 비롯된 게이의 이야기를 풀어내게 된다.

가벼운 터치의 로맨틱 코미디지만 게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신선한 방점을 찍는다.

앞서 2007년에는 MBC TV '커피프린스 1호점'이 남장 여자 고은찬(윤은혜)을 마음에 품게 된 최한결(공유)의 고민을 진지하게 다루기도 했는데, '개인의 취향'은 거기서 더 나아가 게이에 대한 여성들의 긍정적인 시선을 그린다.

◇상업영화, 트랜스젠더를 유쾌하게 그리다
그동안 한국영화는 '후회하지 않아', '친구사이' 등 소규모 영화 외에도 이병헌 주연의 '번지점프를 하다'(2000), 황정민ㆍ정찬 주연의 '로드무비'(2002), 주진모ㆍ조인성 주연의 '쌍화점'(2008) 등 주류 상업 영화에서 동성애 코드를 정면을 다뤘다.

그러다 지난 1월에는 트랜스젠더를 주인공으로 한 코믹영화까지 등장했다.

이나영이 주연한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로 톱스타 이나영이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한 주인공 역을 맡았다.

영화는 사진작가이자 성전환자인 지현과 특수분장사 준서(김지석)의 사랑을 코믹하게 담았다.

변방의 어두운 시선이 아니라, 메인 스트림의 밝은 시선으로 트랜스젠더를 다뤘다는 점에서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는 한국 영화계의 다양성을 한층 높이는 데 기여했다.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이제는 다뤄야 할 때"
이처럼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금기의 영역이 깨지는 데 대해 관계자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당연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TV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대목이 있지만 이제는 좀 더 다양한 소재를 다뤄야할 때라고 말한다.

정운현 MBC 드라마국장은 "지상파 TV 드라마가 타 매체에 비해 보수적이라 변화의 속도가 더디지만 조금씩 소재를 확장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며 "천편일률적인 드라마 세팅에서 벗어나 금기의 영역에도 도전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동성애는 여전히 예민한 소재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며 "너무 앞서가면 비난을 받기 마련이다.

시대의 흐름을 잘 타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영섭 SBS 드라마CP는 "현실적으로 동성애가 수면으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마이너라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지상파 TV 드라마에서도 이를 구체적으로 얘기해 볼 때가 됐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인생은 아름다워'의 경우는 김수현 작가에 대한 믿음이 컸다.

김 작가라면 동성애를 자극적으로 소화하지 않고 새로운 사회현상으로서 문제 제기를 하고 수많은 사랑의 형태 중 하나로 진지하게 다룰 것이라 기대했다"며 "많은 여성이 게이 남자 친구를 갖고 싶어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듯, 동성애자도 이제 드라마의 주요 인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연예계 '커밍아웃 1호'인 탤런트 홍석천은 이러한 흐름에 대해 "당연히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가 작품의 양념이나 희화화된 존재 캐릭터 정도로 그려졌는데, 이제는 그런 사람들의 사랑을 진실하게 다뤄보자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 같다"며 "그만큼 열린 사회가 됐다는 것이고 바람직한 흐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동안 연상녀-연하남 커플 이야기가 많았는데, 사랑 중에서 제일 절절하고 처절한 것인 성적 소수자의 사랑 아니냐"며 "7년 전 내가 '완전한 사랑'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동성애자라는 설정만 있었지만, 지금은 그들의 사랑까지 그린다는 점이 정말 반갑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