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항공사 방콕 지사에 근무하는 청년 유타카(니시지마 히데요시).그는 남자를 쇼핑하듯 갈아치우는 이혼녀 도우코(나카야마 미호)를 만나 깊은 관계에 빠져든다. 그러나 유타카는 결혼을 앞둔 상황.약혼녀와 도우코 사이에서 택일해야만 한다.

오는 15일 개봉되는 '사요나라 이츠카'('안녕 언젠가'란 뜻)는 25년간에 걸친 두 연인의 엇갈린 사랑을 감각적으로 포착해낸다. 한국인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지만 한국 감독이 연출하고 한국 자본으로 만든 한 · 일 합작 영화다.

올해 초 일본에서 개봉된 이 작품은 흥행에 대성공했다. 한 · 일 합작 영화가 일본에서 히트한 것은 처음이어서 새로운 합작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이 영화는 CJ엔터테인먼트와 아이엠픽쳐스가 공동으로 기획해 총 70억원을 투입했고 흥행 멜로 '내 머리속의 지우개'의 이재한 감독이 연출했다. '내 머리속의 지우개'는 일본에서 상영된 한국 영화 중 최다 관객 기록을 갖고 있다. 이 감독은 일본 팬들의 감성을 가장 잘 건드리는 한국 감독.그러나 원작은 '냉정과 열정 사이'의 작가 쓰지 히토나리의 소설이다.

관능적인 도우코 역을 맡은 나카야마 미호는 11년 전 한국에서 빅히트한 '러브레터'(1999년)의 히로인.상대역을 비롯한 배우 전원이 일본인이며 대사도 일본어다. 감독이나 자본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외형만으로 보면 일본 영화다.

'사요나라 이츠카'는 1월23일 일본에서 개봉돼 지난달까지 약 135억원의 입장수입을 올렸다. 극장 몫 절반을 제외한 일본 투자배급사의 몫은 약 68억원이다. 후지TV는 이 영화 판권을 250만달러(약 28억원)에 수입해 40억원 정도의 수익을 냈다. 앞으로 DVD가 발매되면 수익금 중 일부를 CJ엔터테인먼트가 가져온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이 합작한 '싸이보그 그녀''오이시맨''보트''도쿄' 등 10여 편이 흥행에 참패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과 중국이 합작한 '무극''묵공''소피의 연애 매뉴얼''삼국지-용의 부활' 등도 실패했다. 한국과 일본,중국 배우나 스태프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점을 드러냈고 이야기도 관객들을 흡인하지 못했다. 극중 내용과 언어,연기까지 조화를 이루지 못한 국적불명의 영화였다. 한국과 중국,일본 관객들의 감수성도 천양지차라는 게 영화인들의 분석이었다.

그러나 '사요나라 이츠카'는 합작 냄새를 지우고 현지화에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이 감독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는 일본 멜로영화를 만든 것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을 읽은 뒤 영화화에 뛰어든 이 감독은 "영화의 성패는 일본어를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에 달렸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한국어로 시나리오를 쓰고 일본어로 번역하는 수순을 밟았다. 이 과정에서 전문 번역가를 1~2명만 기용한 게 아니었다. 한국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재일교포,언어학 교수,동시통역사 등 한국인 4명과 일본인 4명을 투입했다. 그래서 대사 속의 미묘한 언어차이를 잘 잡아낼 수 있었다. 번역 과정만 거의 1년이 걸렸다. 그 사이 이 감독의 일본어 실력은 늘었고 일본 문화도 알게 됐다. 일본어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외울 정도였다.

이 같은 사전준비를 거친 덕분에 1000명의 일본인을 출연시켜 일본과 한국,태국 등 3개국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두 연인의 러브신이 펼쳐지는 방콕 오리엔털호텔은 130년 전통을 지닌 명소로 영화 촬영을 처음 허용해 화제를 모았다.

CJ엔터테인먼트 측은 '사요나라 이츠카'의 성공에 힘입어 이와 비슷한 프로젝트를 늘리기로 했다. 일본과 중국에서 현지인의 감성으로 작품을 찍기로 한 것.한국의 제작능력을 토대로 현지 배우들을 기용해 일본과 중국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CJ엔터테인먼트의 최준환 상무는 "'사요나라 이츠카'를 통해 철저한 현지화만이 살길이란 교훈을 얻었다"며 "일본과 중국에서 촬영할 합작 프로젝트 몇 가지를 추가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