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身 건강한 사람이 이상형이라는데 왜 남들은 가식으로 치부하지?
어떤 문제에 조금 민감하게 반응하면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일 욕심 많지만 사랑앞에선 '숙맥'인데 왜 남자들은 내 앞에서 작아지지?
사회에는 다양한 편견이 있고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곤 한다. 상처받는 이들 중에는 30대를 넘어선 전문직 여성들도 손을 들고 서 있다. 이들은 노처녀 히스테리는 물론 직업적 특성으로 인한 편견까지 감내해야 한다고 푸념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골드미스들이 주목받으면서 돈 있고 능력 있는 여성들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이 낳은 결과라고 분석한다. 반면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겠느냐"며 실제로 전문직 여성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직업적 특성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주장도 있다. 전문직 골드미스 본인들은 어떤 입장일까. 그들의 속내를 들어봤다.
◆ 일을 사랑해 일과 닮는 그녀들
'사랑하면 서로닮는다'는 말이 있다. 이것이 직업에도 해당되느냐는 질문에 인터뷰를 진행한 골드미스 4명은 모두 "일부 그런 면이 있다"고 답했다.
김현지씨(36)는 7년차 베테랑 헤드헌터다.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을 회사와 연결시켜 주다 보니 주변에서 '남자 만나면 견적부터 뽑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김씨는 "실제로 나이와 직종 경력을 바탕으로 연봉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일이 주된 업무"라며 "때문에 처음 만난 남자의 나이와 경력 직급 정도만 알면 현재 연봉이 얼마고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무의식적으로 떠오른다"고 말했다.
대학병원 산부인과 의사인 박연희씨(34)는 함께 사는 부모님에게 '매사에 반응이 없다'는 핀잔을 자주 듣는다. 한번은 어머니가 아프다고 말하자 '별것 아니다'며 집에 있는 약 몇 개를 갖다 드린 적도 있다. 이에 어머니는 무성의한 딸의 태도에 화를 내기도 했단다.
박씨는 "자궁암 난소암 환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사망하고 산모들도 출혈과다로 죽는 경우도 많다"며 "매일 삶과 죽음을 오가다 보니 웬만한 병은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 그래도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법'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성격이 변하는 건 당연하지만 전문직을 가진 노처녀라고 해서 유난히 심한 것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언론사에서 근무하는 안은영씨(39)는 16년차 기자이자 4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여자생활백서>(해냄출판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여자공감> <사랑하기 전에 알아야 할 모든 것> 등 다수의 연애 관련 책을 썼다. 이 같은 이력만 놓고 보면 '성격 까칠한 연애선수'일 것 같지만 첫사랑만 7년,연애 기간이 기본 3년인 순정파다. 연애할 땐 으레 친구들에게 상담을 받는다. 안씨는 "원래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법"이라며 "연애할 때면 오히려 내가 애인의 손바닥 안에 있다"고 말했다.
박연희씨는 자신의 별명이 '덜렁이' '인생이 시트콤'이라고 소개했다. 산만한 행동 때문에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란다. 대학 시절 '대출'(친구 대신 출석 부를 때 대답하는 것) 해주다 교수에게 걸리는 것은 다반사,툭하면 MP3와 지갑 등을 지하철에 놓고 내려 자선사업가로 불리기도 했다. 박씨는 "수술 땐 항상 긴장하고 냉정함을 유지하지만 퇴근하고 나면 어김없이 덜렁이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김현지씨도 항상 엘리트 직장인들을 상대하다 보니 "눈이 에베레스트산보다 높을 것"이라는 얘기를 듣지만 자신은 오히려 "환상이 없다"고 말했다.
금융사에서 인수 · 합병(M&A) 업무를 담당하는 35~36세 남성들 중에선 연봉이 최대 20억원을 넘는 사람도 있지만,인간미 없이 돈만 많이 버는 사람도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중요한 것은 연봉보다 자신의 업무를 오래 즐기면서 하는 것"이며 "일에 몸을 혹사시키는 사람보다는 건강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김씨의 이상형을 가식으로 치부해 버린단다. 김씨에 대한 자신의 설명이 상대방의 편견에 가려져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 상처는 벽을 만든다
안은영씨는 몇 년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 남자가 데이트 신청을 했고 몇 차례 만남을 가졌다. "어느 날 남자의 표정이 굳어 있었죠.내가 쓴 책들을 뒤늦게 보고 나를 선수로 본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 당신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이 얼마나 우스워 보였느냐'며 다짜고짜 화를 냈어요.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도 소용없었어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죠."
안씨는 "이 밖에도 '기자는 여자가 아니잖아'와 같은 말을 들을 때면 사람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 하나가 서 있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른살이 심리학에 묻다>의 저자이자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김혜남 원장은 "한국 사람들은 어떤 이들을 그룹으로 나눠 단정지어 버리는 습성이 있다"며 "특히 여성이 시집도 안 가고 전문직에 종사하니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이 같은 편견을 깨기 위해선 자신의 참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며 "한편으로는 '내가 누군데' 혹은 '내가 어떻게 그런 걸 해'라는 우월감 섞인 태도가 상대방의 경계심을 자극하고 선입견을 강화시킨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직 골드미스 중 많은 이들이 결혼에 무관심할 거라는 인식과 달리 인터뷰에 응한 이들 중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은 결혼하지 않은 많은 이유들 중 "자신들 앞에서 작아지는 남자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연희씨는 "소개팅을 해도 회사원들에게선 유난히 애프터가 안 들어온다"며 "기본적으로 남자들은 여자보다 잘나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펌회사의 3년차 변호사인 이문경씨(33)도 "가끔 변호사와 자신의 직업을 비교하며 자격지심을 갖는 남성들이 있다"며 "때문에 자연스레 전문직 남녀가 만나는 일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자분들 중에선 전문직이 아니더라도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계신 분이 더 멋져 보일 때가 많아요. 소개팅 자리에서 법률 상담을 청하지만 않는다면요. "(웃음)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