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에/ 배꽃 그림자/ 유리창에 흔들려/ 늦은 저녁/ 그대 그리움에/ 잠자리 뒤척이면서/ 새로이 가슴 아파라.'(<봄밤> 전문)

시인 강상기씨(64)의 세 번째 시집 《와와 쏴쏴》(시와에세이 펴냄)는 섬세하고 여린 시편들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시적 울림은 묵직하다. 그가 달빛 아래에서 사람을 그리워하는 동안 유리창에 비친 봄은 '배꽃 그림자'처럼 흔들린다. 그 풍경 속에서 '새로이 가슴 아파'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의 참맛을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두환 정권 시절 군산 제일고 전 · 현직 교사들과 함께 학교 뒷산에서 시국 토론을 하며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낭송했다가 이적단체로 몰려 구속되고 교단에서도 해직된 아픔을 갖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복직해 지난해 퇴직한 그는 지난해 11월 관련자 8명과 함께 2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그가 이번 시집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온갖 풍파를 겪은 데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따뜻하고 희망적이다. 특히 '이 작은 꽃등 하나/ 세상의 어둠/ 환히 밝히며/ 살 수 있거늘'(<패랭이꽃> 전문) 등의 맑고 간결한 시편들이 돋보인다.

이는 그가 '전기 고문에/ 부들부들 떨던'(<별똥> 중) 그때의 기억을 마냥 잊은 게 아니라 그 상처의 옹이 속에서 새롭게 다듬어낸 통찰과 사색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번 시집은 2008년 삶에 대한 자각과 소명을 노래한 시집 《민박촌》 이후 2년 만에 나왔다. 그는 1966년 문예지 《세대》,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