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로 한동안 위축됐던 선진국 자금과 개도국 자금 간의 '글로벌 머니게임'이 최근 들어 재현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 게임을 군사력에 바탕을 둔 1,2차 대전에 이어 돈을 매개로 한 3차 대전인 '전(錢)의 전쟁'으로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재현된 글로벌 전의 전쟁은 'S'자형 투자이론으로 잘 설명된다. S자형 이론은 본래 사람의 성장곡선에서 유래됐다. 모든 신기술과 제품은 시장점유율을 일일이 측정하지 않아도 서서히 틈새시장을 파고든다. 일단 소비자와 가정 속에 10% 정도가 보급되고 나면 급속히 퍼져나가는 큰 흐름을 이룬다.

이 이론을 각국의 경제발전 단계에 적용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이상인 선진국은 중장년기에,1000달러에서 3만달러에 속한 신흥국과 중진국은 청소년기에,1000달러 이하인 저개발국은 유아기에 해당한다. 투자의 3원칙인 수익성 · 안정성 · 환금성에 비춰볼 때 선진국은 수익성이 낮은 대신 안정성이 높고 개도국은 이와 반대다.

이 때문에 선진국 자금은 높은 수익을 좇아 잉여자금은 펀드형태로,잉여자금이 없을 때는 금리차를 이용한 캐리자금 형태로 개도국에 유입된다. 반면 개도국 자금은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을 중시해 위기 이전까지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받은 선진국 자산에 투자한다.

하지만 이번 위기로 미국 국채를 비롯한 선진국 자산의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위기 이전까지 보였던 글로벌 '전의 전쟁'에 균열 조짐이 일고 있다. 최근에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이 선진국의 수익성 추구 자금과 개도국의 안정성 추구 자금의 공동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는 점이다.

올 3월 이후 한국이 이처럼 주목받는 것은 무엇보다 당면한 금융위기를 중국과 더불어 가장 빨리 극복했기 때문이다. 위기가 발생할 경우 특정국이 받을 충격 정도를 나타내는 위기충격강도지수와 위기 후 중심국이 될 가능성을 의미하는 위기극복역량지수로 볼 때 한국과 중국은 위기를 빨리 극복한 국가로 분류된다.

더욱이 위기 이후 새롭게 형성되는 세계경제 질서 형성 과정을 한국이 주도하고 있는 점에 외국인들의 기대가 크다. 한국은 이번 위기를 거치면서 세계경제의 최고 단위로 올라선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의 첫 의장국이다. 최고 경제단위란 가장 구속력 있는 글로벌스탠더드를 만드는 국제협상 혹은 협의체를 말한다. 위기 이전에는 미국이 중심이 돼 선진 7개국(G7)이 담당해 왔다.

또 위기 이후 세계산업지도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녹색 · 모바일 · 임팩트 등 3대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점도 한국이 주목받는 이유다. 특히 모바일 혁명을 불게 하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우리의 시장 지위가 이제는 '중심국'에서 '패권국'으로 변한 점을 감안해 갈수록 승자독식 효과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국인들은 실현 여부와 관계 없이 한국의 신용등급 상향 조정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되면 글로벌 채권지수(WGB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선진국지수에 동반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선 최근 대대적 변신을 꾀하고 있는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의 새로운 잣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많은 분야에 걸쳐 개선이 이뤄졌고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이들 평가사가 앞으로 특정국의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시기는 '사후'보다 '사전'에,'정기'보다 '수시' 평가를 중시하되 그 잣대는 보다 객관적인 계량지표를 통해 투자자들을 안내하는 본래의 역할에 충실을 기하겠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3대 신용평가사의 새로운 기준을 토대로 한국의 신용등급 상향 조정 가능성을 미리 평가해 보면 그 어느 국가보다 높게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신용등급이 조정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그 중에서 최근 다시 3대 신용평가사가 주목하고 있는 북한 관련 지정학적 위험이 안정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기대되는 것은 이런 남은 과제들이 최근 들어 해결되고 있고 지정학적 위험에 대한 가중치가 종전보다 낮아졌다는 점이다. 이를 감안할 때 피치와 S&P가 2005년,무디스가 2007년 마지막으로 조정한 이후 변동이 없는 한국의 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되고 WGBI와 MSCI에 편입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