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의 인사 적체가 심해지면서 초임 사무관이 고위공무원으로 승진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1960~1970년대에는 임용된 지 10여년 만에 국장으로 승진했고,20년 뒤엔 장관에 오르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요즘은 임용 10여년 만에 국장으로 승진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30년이 지나도 장관은커녕 차관 자리에 오르기도 쉽지 않다.

한국경제신문이 1960년부터 1971년까지 고등고시 12~14회(1960~1962년),행정고시 1~10회(1964~1971년)를 통과해 경제부처 장관에 오른 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수습 사무관부터 국장까지 승진하는 데 걸린 기간은 평균 16.8년에 불과했다. 장관까지는 평균 31.4년 걸렸다.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현 동부그룹 고문)은 공직에 몸담은 지 20년 만에 장관이 됐다. 그는 1960년 제12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고 이듬해 11월 재무부 국고국에서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8년 뒤인 1969년 경제기획원 예산총괄과장이 됐고 다시 4년 후인 1973년에 물가정책국장으로 승진했다. 예산국장,기획국장,경제국장 등을 거쳐 1977년 차관보가 됐다. 1982년 재무부 차관으로 승진한 강 전 부총리는 그해 6월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초임 사무관부터 국장 승진까지 11년3개월 소요됐고 국장에서 장관이 되기까지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1960년 이후 행시에 합격해 경제부처 장관이 된 경제관료들 가운데 초임 사무관부터 국장 승진까지 걸린 기간이 가장 짧은 사람은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10년에 불과했다.

반면 현재 기획재정부에 근무 중인 국장 13명이 수습 사무관에서부터 국장이 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26.3년으로 역대 장관들보다 10년 정도 길었다. 재정부 A국장은 국장이 되기까지 29년 소요됐다.

차관급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에서 여성부 차관으로 승진한 김교식 차관(행시 23회)은 1980년 관세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뒤 15년간 사무관 직책에 머물렀다. 만 18년 되던 해인 1998년 과장으로 승진했고 21년이 지난 2001년 부이사관이 됐다. 강 전 부총리였다면 이미 장관이 됐을 연배다. 김 차관은 2004년 국장급인 고위공무원 '나'급(옛 2급 · 이사관)으로 승진했고 공직에 발을 들인 지 30년 만인 지난달 비로소 차관으로 임명됐다.

김 차관이 유난히 승진이 늦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허경욱 재정부 1차관(행시 22회) 역시 첫 임용 후 30년이 지나서야 차관 자리에 올랐고 김 차관의 행시 동기 중 일부는 아직 재정부 실 · 국장으로 남아 있다.

과장급으로 내려가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재정부의 경우 공직근무 기간이 15~24년인 행시 30~39회 출신들이 과장 자리를 맡고 있다. 재정부 과장 100여명 중 행시 37회가 34명,38회가 21명으로 절반이 넘어 이들이 실 · 국장 자리에 오를 무렵에는 지금보다 인사 적체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개발연대에는 경제 성장과 함께 정부 조직도 확대돼 공무원들이 진출할 자리가 많았지만 갈수록 정부 조직을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어 인사 적체가 만성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한때 100여개에 달하던 산하 공기업도 지금은 4곳뿐"이라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