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의 서강신용협동조합은 2월26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영업정지 결정을 받았다. 강원도의 한 지방건설사에 자기자본(30억원)의 세 배 가까운 86억원을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형식으로 빌려준 게 화근이었다.

신협의 동일인 대출 한도는 자기자본의 20%.6억원까지만 대출할 수 있었지만 서강신협은 '부동산 신화'에 취해 이를 어겼다. 검사 책임이 있는 신협중앙회는 불법대출이 이뤄진 지 6개월이 지난 다음에야 이 사실을 적발했다.

서민금융회사에 빨간불이 켜졌다. '서민금융 3인방'으로 불리는 상호저축은행,신용협동조합,새마을금고 모두 부실 누적과 잇따른 비리사건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예금보호제도와 비과세 예금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총자산이 2005년 말 117조원에서 작년 말 200조원으로 불어났지만,외형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영 행태가 서민금융회사를 어려움에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협 · 새마을금고,계속되는 금융사고

신협과 새마을금고는 계속되는 금융사고와 부실 누적이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가장 큰 문제는 횡령 등 각종 금융 사고다. 조합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들 회사는 이사장이나 지점장 권한이 지나치게 커 제대로 된 감시 · 감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작년 4월 충남 홍성 광천새마을금고에서는 이모 이사장과 직원들이 10년간 고객돈 1500억원을 가로챈 대형 금융사고가 터졌다. 지난해 7월에는 서울 광진구의 한 새마을금고에서 지점장이 87억원을 횡령,유흥 · 도박비용으로 탕진한 사건이 발생했다.

임직원들의 비리 행위로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전에 있는 한우리신협의 모임원은 2006년 11월께 거래처이자 회사 사무실 리모델링을 맡았던 한 건설사로부터 공사 수주에 대한 대가로 수천만원에 상당하는 금품을 받았다가 금감원에 적발됐다.

뿐만 아니다. 새마을금고와 신협은 서민금융 지원이라는 설립 취지와 달리 대출에 인색하다. 새마을금고의 작년 말 예금잔액은 68조281억원으로 2008년 말에 비해 21.4% 급증했다. 반면 대출잔액은 38조3241억원으로 12.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신협중앙회도 예금은 28.4% 증가한 반면 대출은 9.9% 늘었다. 대출보다는 유가증권이나 부동산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얘기다.

대출도 설립 취지에 맞는 서민보다는 부동산 대출 등을 선호한다. 적은 노력을 들이고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실적은 신통치 못하다. 신협중앙회의 경우 누적손실이 5000억원에 달할 정도다.

◆저축은행,부동산 대출부실로 속앓이

덩치 불리기를 지속하고 있는 저축은행들은 부실 증가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 2월 말 현재 104개 저축은행 자산은 85조4095억원.1년 전보다 19.9% 늘었다. 자산 규모가 5조원을 넘는 부산,한국,솔로몬,현대스위스,토마토 등 5개 계열 저축은행의 자산 규모는 38조9323억원으로 33.6%나 증가했다.

저축은행들이 덩치를 불리는 건 문제될 게 없다. 그렇지만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뒤따르지 않아 자산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저축은행 연체율은 작년 말 13.2%에서 2월 말 15.7%로 급증했다.

연체율 상승 요인은 PF대출 등 부동산 관련 대출이다. 저축은행의 부동산 관련 대출은 전체 여신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건설경기가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다 보니 연체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금융계에서는 작년 말 현재 11조8084억원에 달하는 PF 대출이 특히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부동산경기 침체로 PF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관련 저축은행도 동반 부실화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금융감독 당국 관계자는 "저축은행들이 중소기업과 서민들을 지원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잊은 채 당장 이익이 많이 남는 부동산 대출에 치중했던 것이 후유증을 낳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강도 규제 하소연도

글로벌 금융위기와 부동산 대출 부실,횡령 등 각종 사고가 겹치자 금융당국이 규제에 나서고 있다. 일부에서는 5000만원으로 돼 있는 예금보험 한도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건실한 경영을 해온 저축은행 등 상당수 서민 금융사들은 급작스러운 규제 강화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작년 말 전일저축은행이 영업 정지를 당한 이후 금융당국이 은행에 적용하는 수준의 강도높은 규제를 한꺼번에 쏟아내고 있다"며 "건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처리하듯 대책을 내놓으면 서민금융 전반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