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잖아요. 자격증이 있는데 어느 대학을 나왔으면 어때요. " "그렇지 않습니다. SKY 출신은 자신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만 저는 스스로 제 가치를 증명해야 해요. 유명병원 인턴 시절만 해도 지방대 출신인 제가 어떻게 거기서 일하게 됐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

멍했다. 학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자체가 설명할 일 없었던 데서 비롯된 특권의식이었나 싶어 아찔했고,SKY 간판을 달지 못한 자식들이 같은 문제에 부딪칠지 모른다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했다.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는 건 세상의 신뢰가 덜하다는 얘기고 그건 자유롭고 당당하기 어렵다는 걸 뜻한다.

자유는 당사자의 의지가 아닌 주위의 믿음에서 비롯된다. 권위와 독립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주장하고 부르짖는다고 권위 있고 독립적이 되는 게 아니라 주위에서 믿고 인정하고 그럴 만하다고 받아들여야 생겨나는 것이다. 믿음은 어디서 솟아나는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자신의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달렸다.

부모는 부모,자식은 자식 노릇을 잘해야 서로의 믿음을 얻을 수 있다. 부모가 반듯한 삶을 보여주지 못한 채 일방적 생각을 강요하면서 자식이 믿고 따르기를 기대할 순 없다. 자식 또한 잦은 말썽으로 부모를 전전긍긍하게 만들면서 인정받긴 어렵다.

회사 등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사가 실력있고 합리적이면 신뢰가 쌓이면서 말 한마디에도 권위가 실리지만 그렇지 않은 채 권위주의적으로 몰아붙이면 마지 못해 굴복할 뿐 존경은 어림없다. 부하직원 역시 실력과 태도로 상사에게 믿음을 주면 일정 부분 자유와 권한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살기 고달프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법무관 출신 신임법관 임명식 기념식사에서 "법관의 독립을 지켜내기 위해 해야 할 최우선의 일은 재판을 잘하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재판을 제대로 못하면 법관 개개인의 독립을 위협할 여지를 제공하게 되고 끝내는 사법부의 독립까지 위태롭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역시 같은 맥락의 취임사를 내놓았다. "누구나 한국은행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권위는 외부에서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쌓아가야 한다"고 밝힌 게 그것이다. 김 총재는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함께 중립성 · 자율성 · 자주성을 지키지 못하면 한은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재판을 잘하는 것,한은의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것의 정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 대법원장은 "헌법이 법관의 독립을 보장한 건 법관으로 하여금 공정하고 투명한 재판을 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라고 강조했다. 법관의 독립성은 공정하고 투명한 재판에 달렸다는 얘기다.

독일 태생 미국 철학자 폴 틸리히는 삶의 특징을 애매모호함이라고 규정했다. 선과 악,진실과 거짓,창조적 힘과 파괴적 힘이 개별적 · 사회적으로 분리할 수 없이 혼재돼 있다는 것이다. 같은 책이나 영화도 시각과 시점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법과 원칙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렇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과도한 신념은 오류의 원천이다. '합리적 인간은 자신을 세상에 적응시키지만 비합리적 인간은 세상을 자신에게 적응시키는 데 집착한다'(버나드 쇼)는 말도 있다. 공정성과 합리성은 국민과의 약속이자 직업윤리다. 법관에게 주어진 권위와 독립의 근간이 무엇인지,비판이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한은도 다르지 않다. 국민의 신뢰와 존중에 기초하지 않은 그들만의 독립과 권위는 있을 수 없다. 자유와 독립은 질서의 산물이고 질서는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압력이 아니라 내부에서 확립되는 균형이다. 법관과 한은 관계자 모두 '세상 모든 권리는 책임을,모든 기회는 부담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싶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