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총리 쪽 초반 득점."

얼마 전 형사재판을 다룬 어느 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무슨 제목이 이런가. 형사재판이 무슨 농구게임인가.

형사재판은 피고인에게는 형극의 길이지만 관전자에게는 퍼즐 게임같이 흥미진진한 한 편의 추리소설일 수 있다. 근자에 형사재판은 법정 공방이 치열하게 이뤄지면서 이전보다 훨씬 박진감 넘칠 뿐더러 결과 예측 또한 어려워졌다.

재판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란 말이 새삼 실감난다. 신무기가 선보이고,기습 공격을 감행하며,회심의 카드로 역전을 시도한다. 한 판 진검승부를 보는 듯하다.

일반인의 관심이 큰 사건은 재판 단계가 아닌 수사 단계에서부터 생중계가 시작된다. 피의사실 공표 여부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뜨거운데도,수사기관은 수시로 보도자료를 돌리고 언론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열을 올린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저 멀리 내팽개쳐져 있고,이미 수사 단계에서 단죄가 이뤄진다.

우리가 아는 진실이란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부분적일 수 있다. 전체를 파악하지 않고 부분만으로 전체를 다 아는 듯 착각한다.

변호사로서 변호활동을 하다가 내가 파악한 진실이 법정에서 통하지 않아 당황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 중의 하나가 피고인 측은 대체로 불리한 정보나 손해되는 증거에 대해선 입을 잘 열지 않는다는 점이다. 패전 후 의기소침했던 일본인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워줬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羅生門)'은 살인사건의 증언을 통해 사람들이 어찌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자기합리화와 주관적 각색을 잘 하는지를 보여준다.

돈을 줬다는 사람의 검찰 진술과 법정 진술이 다른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지엽적인 데에서 말이 바뀌는 것은 기억력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핵심에서는 의도적으로 바뀔 수 있다. 왜 법정에선 주지 않았다고 하면서 검찰에서는 줬다고 하는가. 이는 어쩌면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동물적 본능과 무관치 않을 듯하다. 주었다는 진술과 받지 않았다는 진술이 팽팽하게 대립할 때 서로 상대쪽의 거짓말을 부각시켜 흠집 내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피고인은 시간적으로는 알리바이로,장소적으로는 현장 상황으로 반격을 가하기도 한다.

어찌나 진실 찾기가 수수께끼이며 미로인지,같은 사건에 대한 재판도 민사와 형사의 판단이 달라진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O J 심슨 살인사건의 형사재판은 변호사가 연출한 최고의 쇼라고 한다. "부자라서 무죄인가"라는 논란과 함께 민사소송에서는 형사재판과 반대로 살인이 인정됐다.

무죄라는 것은 단지 유죄로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뿐이다. 진실을 찾아감에 있어서는 상대방 입장에서 냉철하게 바라보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주흥 <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juhlee@hwawo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