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조직이건 수장이 바뀌면 변화를 바라는 수요가 있게 마련이다. 최근 취임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에 걸맞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한 만큼 근본적 개혁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어떤 개혁이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추진하는 게 좋다. 이를 위해 당연히 조직 개혁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한은은 '순혈주의'를 중시한 탓에 너무 폐쇄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정책 조사 국제 금융안정 등 '직군제'를 고수하며 나눠먹기식 인사를 해 온 측면이 있었다. 한은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전철환 전 총재(1998~2002년)와 이성태 전 총재 등은 취임 직후 조직 개혁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폐쇄적인 조직이 독립성만 외치면 자칫 시장,정부 등 외부와 소통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처럼 금융사에 대한 감독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조직과 권한만으로 시스템 리스크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금융위기로 체면을 구겼지만 소통에 관한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역량은 독보적이다. 무엇보다 내 · 외부를 따지지 않고 과감하게 발탁인사를 하고 있다. 뉴욕연방은행의 브라이언 색 부총재는 39세다. 매크로이코노믹 어드바이저스에서 부사장으로 근무하다 작년 6월 영입됐다. 그 전에는 FRB에서 통화 · 금융시장 분석업무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금융시장 정보를 제공하는 업무를 했다. 2006년 2월부터 FOMC 위원을 맡고 있는 케빈 워시는 40세다. 대통령에게 경제 정책을 자문하는 특별보좌역을 하다 FRB에 발탁된 것이다. 그 전에는 모건스탠리 인수 · 합병(M&A)사업부에서 7년 동안 근무한 경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월가 금융사의 주요 이코노미스트들 상당수는 FRB 출신이다. 부르스 카스만 JP모건체이스 수석이코노미스트,이탄 해리스 뱅크오브아메리카 · 메릴린치 선임 이코노미스트 등은 FRB에서 미국 경제를 분석하다 월가에 자리를 옮긴 이들이다. 월가 주요 금융사 이코노미스트의 절반 이상이 FRB 출신이라고 보면 된다. 월가에서는 이들을 '중앙은행 감시자(Fed watcher)'라고 부른다.

버냉키 의장은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부 장관과 수시로 통화하며 경제 현안을 논의한다. 리먼 사태가 터졌을 때에는 당시 폴슨 재무부 장관과 매일 만나 대책을 협의했다. 그래도 아무도 FRB의 독립성을 우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비 전통적 통화완화 정책을 동원해 수렁에 빠진 미국 경제를 건져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총재는 한국이 선진국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통화정책 이외의 경제 정책 면에서 정부에 적극 조언해야 한다. 또 시장과 소통할 수 있도록 고여 있는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차제에 국내 및 국제 시장을 통합한 시장그룹을 만들어 부총재급이 이를 총괄토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은 개혁은 G20 의장국과 무관하게 추진해야 할 해묵은 과제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