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원활하게 작동되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각종 경제위기에 직면해 각국 정부는 재정정책과 금융정책 같은 거시적 경제정책을 사용해 경제안정화를 달성하고자 한다. 이들 정책의 성공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오랜 세월 동안 경제성장과 소득분배 개선이란 지표에 기준을 두어 왔다.

경제정책 입안자나 학계에서의 성장과 분배에 대한 소모적 논쟁은 오해와 편견이라는 굴레에 사로잡혀 있다. 어느 것이 먼저인가 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두 지표가 선순환적인 관계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 강하게 각인돼 있다.

우리나라의 과거 경험을 보자.가계조사 자료를 이용해 1인당 소득의 지니계수를 보면 고도성장기인 1980~90년대에는 0.26 정도로 양호한 분배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으나,외환위기 이후의 저성장 시기에는 분배가 오히려 악화돼 0.30대에 이르렀다. 이는 우리 인식과는 반대 경험을 해왔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는 우리만의 경험이 아니다. 우리가 따라가고 싶어 하는 선진국들을 보아도 우리보다 1인당 소득이 높고 분배 상태도 양호함을 알 수 있다.

과거 정부는 성장과 분배가 상호 대립적 관계라는 인식 아래 고소득층의 소득 감소를 통해 분배개선을 유도하자는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오히려 시장경제에 의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평균소득의 감소로 경제성장을 저해했을 뿐만 아니라 소득분배의 악화라는 결과를 낳았다. 아마도 당시의 정책입안자들은 저소득층 소득이 고정됐다고 보고 평균소득의 감소를 감수해서라도 고소득층 소득이 감소하면 소득분배가 개선될 것이라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각종 거시적 경제정책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이 돼야 할까. 소득분배의 정도를 반영하는 상대빈곤층이 아니라 최저생계비 혹은 빈곤선 이하에 살고 있는 절대빈곤층의 감소에 최종 목표가 두어져야 한다.

우리의 경제성장 과정을 보면 지속적인 절대빈곤의 감소가 동반하는 빈곤감소적 성장(pro-poor growth)을 보여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최저생계비 기준으로 볼 때 1980년대 이후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절대빈곤율이 외환위기 직전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이후 저성장기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상승해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성장과 빈곤의 선순환은 우리나라만의 경험이 아니다. 세계 국가들의 성장률과 빈곤율 관계를 조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인 국가그룹은 빈곤이 증가하고 성장률이 높은 국가그룹은 빈곤이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정책입안자들이 절대빈곤층의 감소에 우선적 정책목표를 두었을 때 경제성장과 소득분배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아무리 소득분배가 좋아도 모든 구성원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낮은 수준에서 생활하고 있다면 이는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선진국처럼 높은 소득을 유지하면서 소득분배도 양호한 상태가 더욱 바람직하다. 성장과 분배의 선택에 절대빈곤 감소라는 또 하나의 선택을 포함하자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통해 성장,분배개선 및 절대빈곤 감소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먼저 시장경제의 활성화는 경제성장률 증가를 통해 분배할 수 있는 자원을 늘리고 전반적인 국가의 부를 증진시켜야 한다. 물론 경제성장만으로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동시에 정부는 절대빈곤층을 감소시킬 수 있는 지출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비로소 우리는 빈곤감소를 동반하는 성장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강성진 < 고려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