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정적 시기에 일본과 다른 길을 갔다. 그것이 일본기업을 추월한 비결이다. "

삼성전자 사장을 지낸 L씨가 몇년 전 강연에서 한 말이다. 스승과 같았던 일본기업들을 넘어선 비결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기술이 급변하는 중요한 시기에 일본기업들이 채택한 방식과 다른 길을 선택함으로써 삼성은 선두기업을 추월할 기반을 닦았다는 설명이었다.

전자산업뿐 아니다. 1990년대 세계 정상에 선 조선업과 세계시장을 향해 약진하고 있는 한국의 자동차산업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들여와 사업을 시작했지만 역사적 변곡점에서 그들은 스승(일본기업)과는 다른 길을 택함으로써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오너와 CEO들의 직관과 창의적 경영판단이 기업을 글로벌 강자로 성장케 만든 셈이다.

◆"우리가 만들면 사갈 사람 있다"

1993년 어느날.울산 현대중공업으로 서울 에서 팩스 한 장이 날아들었다. 이를 받아본 임원들은 아연실색했다. "8,9도크를 파기 위한 부지를 물색하라"는 정주영 회장의 지시였다. 당시 세계 조선업계는 불황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시절이었다. 배값이 떨어지자 세계 조선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업체들은 생산량을 줄였다. 고통스럽기는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였다. 7도크까지 파 놓고 일거리가 없어 놀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임원들은 회장의 지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회장의 명을 거부할 수 없었던 임원들은 터를 알아보는 시늉만 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어느날 정 회장이 갑자기 울산공장을 찾아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야. 도크 더 파라는 지시를 내린 게 언제인데"라며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임원들을 데리고 곧장 공장 내에 있는 야산으로 올라갔다. 정 회장은 야적장으로 쓰고 있는 좁은 공터를 가리키며 "저기 다 파"라고 지시했다. 바다에 인접해 있었지만 비좁아 도크를 팔만한 땅이 아니라고 임원들은 반문했다. 정 회장은 "바다를 메워"라는 말을 남기고 헬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버렸다.

바다를 메우고 공사를 벌여 유조선 건조용 8,9도크를 완공했다. 때마침 1994년 말부터 세계 유조선경기가 호황으로 돌아섰다. 8,9도크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며 일본 조선업체들을 회생불능의 상태로 몰아넣은 일등공신 몫을 했다. 정동익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1990년대 감산을 통해 인위적으로 가격하락을 막으려는 일본기업과 증산을 통해 지배력을 확대한 한국기업의 전략이 승패를 갈랐다"고 말했다.

◆삼성,1등제품은 일본과 달랐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주요 품목인 반도체와 TV,LCD 등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결정적 시기에 일본기업들과 다른 경영판단을 내린것.

우선 반도체 얘기는 유명하다. 1988년 4메가 D램을 개발할 때가 변곡점이 됐다. 당시 반도체 집적도를 높이는 것이 숙제였다. 세계 1위였던 도시바는 웨이퍼 밑으로 파고 들어가는 트렌치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파는 것보다 쌓는 것이 쉽다"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스택(Stack) 방식을 채택했다. 이후 스택 방식은 효율성과 품질에서 트렌치 방식을 앞서는 것으로 판명됐다. 스택 방식은 삼성이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에 올라서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TV시장에서 명암은 2000년대 중반 갈렸다. 수십년간 세계 TV시장을 장악해온 소니는 아날로그 TV에 집중했다. 소니는 엄청나게 투자한 트리니트론이라는 독자 기술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후발주자인 삼성전자는 디지털시대로 전환되는 것이 기회라고 판단하고 PDP에 이어 2004년부터 LCD TV에 집중했다. 2005년 이후 LCD TV 시장이 만개하면서 삼성전자는 TV시장 세계 1위에 올랐다. 올 2월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시장인 미국에서 점유율 36%(금액기준)를 기록하며 5년 연속 세계TV 시장 1위를 향한 순항을 시작했다.

TV의 주요부품인 LCD 패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삼성은 향후 TV의 품질은 LCD 성능이 좌우할 것이라고 판단, 집중 투자에 나선 반면 소니는 LCD 수요가 급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다른 회사에서 받아오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소니는 TV는 물론 디지털TV 시장의 주도권을 통째로 삼성에 빼앗기고 말았다.

◆현대자동차의 대형엔진 개발

설립 당시부터 일본 미쓰비시에서 기술지원을 받아온 현대차는 1990년대 말 미쓰비시를 넘어서는 전기를 마련한다. 당시 미쓰비시가 개발했지만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3000cc 이상 대형엔진을 한국형으로 개조해 에쿠스에 장착한 것.그때까지만 해도 전세계에서 3000cc 이상 엔진을 만드는 회사는 미국과 독일,일본 회사 몇 개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러나 현대차 경영진은 대형차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판단,이를 밀어붙여 대형차 시장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2000년대들어 현대차가 보여준 행보는 더욱 과감했다. 2000년 이후 10년 만에 미국,일본,슬로바키아,중국,터키 등 세계 곳곳에 7개 공장을 지으며 세계 자동차 업체 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투자에 대한 과감한 결단이 스승과 같았던 미쓰비시를 멀리 따돌리고 세계 자동차 시장의 강자로 부상하게 만든 셈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