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학교'로 불렸던 덕수상고(현재 덕수고)가 오는 13일로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덕수고는'센추리'를 기념하기 위해 10일 오후3시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덕수상고는 한국 금융업의 인재 산실역할을 했다. 1970년대 한국은행 신탁은행 제일은행 상업은행 한일은행 등 전국 주요 은행 채용인원의 30%를 덕수상고 출신들이 꿰찰 정도였다. 지난 100년간 배출한 금융인만 5000명에 달한다. 1980년대 금융사관학교라는 별칭이 더 붙은 이유다.

덕수고는 현재도 금융권에서 가장 많은 인맥을 자랑하는 고교다. 6개 시중은행(국민 신한 우리 하나 기업 외환은행)에 현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덕수고 출신은 대략 2000여명에 달한다.

현직 지점장만 566명으로 전국 은행지점이 7380곳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지점 13곳당 1곳꼴로 덕수고 출신이다. 이름만 얘기해도 알 만한 사람이 많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이백순 신한은행장(59회)과 김동수 수출입은행장(62회)은 덕수고 후배들의 우상이다.

김교성 기업은행 부행장(61회),박인철 우리금융지주 상무(61회),허창기 제주은행장(62회),김흥운 국민은행 부행장(64회),김인환 중국 하나은행장(66회) 등도 모두 덕수고 인맥이다.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에도 덕수고 출신이 맹활약하고 있다. 신현규 토마토저축은행 회장(58회)과 김광진 현대스위스저축은행 회장(63회) 등이 이 학교 동문이다.

덕수고 인재는 산업계와 관계, 법조계와 언론계 등에도 고루 포진해 있다. 산업계에선 김광수 미래엔컬처(옛 대한교과서) 회장(35회)이 큰 형님으로 중심을 잡고 있다.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 사이에서 전설로 통하는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은 43회 졸업생이다.

덕수상고의 인재 배출은 1960~70년대 사회적 배경과 맞물려 있다. 당시 비쌌던 대학 학비 탓에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수재들은 미래가 보장되는 금융권으로 진출하려 했다. 시대적으론 경제개발계획과 맞물려 은행들이 급팽창했고 상고 출신 인재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상고 출신자들의 계산능력도 한몫했다. 김천배 덕수고 총동창회 사무처장(1998년 한일은행 퇴사 · 50회)은 "컴퓨터가 없어 은행원들은 주판을 들고 직접 예금금리나 대출 이자를 계산해야 했다"며 "은행은 주산에 익숙한 상고 출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고 말했다. 당시 덕수상고 졸업생들은 아마추어로서는 최고 높은 1급 주산 자격을 획득한 뒤 졸업했다.

덕수상고는 1980년대 이후부터 위기를 맞았다. 제5공화국이 대학정원을 크게 늘리면서 상고수요가 줄어든 탓이다. 대학문이 넓어지자 상고에 들어갔던 인재들이 대학으로 쏠렸다.

현재 금융권을 주름잡고 있는 상고 출신들이 대략 50대 중반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5년 뒤 상고 출신 고위 금융인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덕수고는 과거 덕수상고와 교육과목면에서 차이가 많다. 상고 전문학교가 아니라 특성화계열과 일반계열이 합쳐진 종합학교 형태다. 변화를 거듭한 덕수고가 옛 덕수상고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선배들이 지켜보고 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