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국내 최대 인덱스펀드 굴리는 박 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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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이나 존 템플턴과 같은 운용철학을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잡스와 구글의 창업자들(세르게이 브린, 레리 페이지)의 신(新) 사고를 배워야 합니다."
교보악사자산운용에서 다소 패시브(소극적)한 성격의 인덱스펀드를 운용하는 박 찬 인덱스운용팀장(사진· 40)의 말이다.
인덱스펀드는 지수를 추종하되 종목선택에 있어서 다소 소극적으로 운용하는 펀드다. 그렇다보니 이 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 또한 그럴 것이라는 편견이 생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박 팀장은 국내에서 가장 큰 인덱스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답게 적극적이고 담대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선배 펀드매니저들을 따라하는 운용스타일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한다. 변화무쌍한 시대에서 누군가를 쫓는 것은 거꾸로 가는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펀드운용은 매니저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운용스타일을 발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발상을 하는 기업가나 예술인에게서 배울 점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후배들에게 개성과 의견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라고 항상 주문합니다."
한국경제신문 온라인미디어 <한경닷컴>은 단일 인덱스펀드로는 국내 최대규모인 1조6401억원을 주무르는 박 팀장을 지난 2일 만났다. 그는 트레이더에서 펀드매니저로 변신한 이력을 가졌다. 그럼에도 '교보악사 파워인덱펀드'를 국내 최대 규모로 키워내는 등 명실공히 대표적인 인덱스펀드매니저다.
◆회삿돈 굴리는 트레이더→국내 최대 인덱스펀드의 펀드매니저로
그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평범한 월급쟁이로 사회에 첫발을 들였다. 증권사에서 차익거래 트레이더(단기간의 주가변동으로 증권을 매매하는 자) 생활을 하면서 내공을 쌓기 시작했다.
"삼성그룹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입사 당시만 해도 증권분야에서 일하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심에 삼성증권을 지원했습니다."
막연히 '돈을 벌자'고 들어간 삼성증권에서 시작한 업무는 트레이딩이었다. 박 팀장은 삼성증권에서 3년간 주식을 사고 팔아 이득을 챙기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직을 하면서 증권사에서 업무영역을 넓혔다. 2002년 한국투자증권 딜링룸으로 자리를 옮겨 자기매매 업무를 맡았다.
"한국투자증권 딜링룸에 있을 때에는 자기매매로 매년 평균 15~20% 정도 수익을 냈어요. 증권사에서 이런저런 업무를 맡다가 펀드매니저라는 직업을 알게 됐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가에서 펀드매니저는 기업의 CEO와 같이 최고 수준의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대접을 받고 살더라구요. 그래서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박 팀장은 펀드매니저가 되리라는 결심에 2004년 교보악사자산운용에 입사하게 된다. 서른넷의 나이에 펀드매니저라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한 것이다. 증권사에서 자산운용사로 업계를 갈아타는 동시에 트레이더에서 펀드매니저로 변신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더 남아있었다. 바로 펀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왕 펀드매니저를 하려면 자신만의 펀드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 팀장은 증권사에서 터득한 적극적인 매매기법 노하우를 결합한 인덱스펀드를 구조화하기 시작했다. 펀드의 운용기법과 스타일, 예상판매망까지 새로운 판을 짰다. 이렇게 탄생한 펀드가 '교보악사파워인덱스펀드'다. 펀드의 설정일은 2006년 3월14일. 박 팀장의 결혼기념일과 같다.
'교보악사파워인덱스펀드'는 초기에 모회사인 교보생명의 도움을 받았다. 보통 교보생명의 생명보험 자금 중 일부는 펀드로 편입되곤 했다. 박 팀장은 바로 이 자금을 노렸다. 교보생명의 보험자금을 '파워인덱스펀드'에 편입하면서 펀드의 초기 설정액은 2000억원에 달했다. 당시 국내에서 가장 큰 펀드는 삼성자산운용(당시 삼성투자신탁운용)의 펀드로 설정액이 4000억원 정도였다. 박 팀장의 파워인덱스펀드는 1년이 조금 지난 싯점에 설정액 4000억원을 넘기면서 국내 최대 인덱스펀드로 발돋음했다.
이렇게 보험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펀드는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커진 규모를 바탕으로 판매회사를 넓히기 시작했다. 운용보수가 싸다는 점을 들어 은행, 증권사, 온라인 등 웬만한 판매처는 다 뚫을 수 있었다.
이 펀드의 운용보수는 0.15%로 2006년 인덱스펀드의 평균 수수료가 1.4% 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덕분에 투자자들이 판매사에서 인덱스펀드를 찾을 때에 유일하게 내놓을 수 있는 펀드로 자리잡게 됐다.
저렴한 보수로 무장한 '파워인덱스펀드'는 온라인펀드 시장도 장악하기 시작했다. 시장이 대세상승기에 접어들고 투자자들이 펀드를 온라인으로 직접 가입하는 시대가 열렸다. 저렴한 보수와 지수대비 변동성이 적은 인덱스펀드는 주목을 받았다. 2008년 6월 이 펀드의 설정액은 1조원을 넘게 됐다. 인덱스펀드로는 처음있는 일이었다.
이에 대해 박 팀장은 우연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판매채널을 확대하고 자금을 끌어들이는 방식 등까지 직접 내놓은 아이디어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그가 이 펀드를 자식같이 여기고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도 펀드의 출생부터 성장까지 함께한 데 따른 것이다.
이처럼 남다른 애정이 담긴 탓인지 '파워인덱스펀드'의 수익률도 양호하다. 벤치마크인 코스피지수는 물론이고 인덱스펀드의 평균 수익률을 훌쩍 넘고 있다. 2010년 4월6일 기준으로 최근 1년 수익률은 38.76%에 달한다. 같은 기간 코스피200 지수의 상승률(36.13%)과 인덱스 펀드의 평균 수익률(38.37%)을 각각 2.63%포인트, 0.39%포인트씩 웃도는 성적이다.
◆편입종목 160개…밸류에이션·이익전망 나쁜 주식만 제외하고 대부분 편입
"'인덱스펀드는 안정적이다'라고 시장이 오해하고 있어요. 인덱스펀드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벤치마크 지수(코스피200 지수)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니까요. 인덱스펀드는 사실 지수의 리스크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더니 그는 대뜸 이렇게 얘기했다. 인덱스펀드가 안정적인 투자처라고 오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훌륭한 인덱스펀드라도 예기치 못한 악재로 지수가 급락하면 손실도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인덱스펀드는 액티브펀드 보다 변동성이 작다지만, 이 또한 지수자체의 변동성이 커지면 인덱스펀드도 변동성이 커지므로 안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판매사가 투자자들에게 인덱스펀드를 '안정적'이라고 포장하는 행태에 대해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교보악사파워인덱스펀드는 설정 이후 꾸준히 160여개의 종목을 편입하고 있다. 코스피200 종목 중 40개 종목을 제외하곤 전부 사 놓았다. 밸류에이션(실적대비 주가수준)과 이익추정치 등의 지표를 살펴 나쁜 주식만 빼고 나머지는 다 매수했다. 최근들어 추가로 편입할 종목들도 저울질하고 있다.
"액티브한 매니저는 좋은 주식만 골라 사는 게 임무죠. 반면 패시브한 매니저는 나쁜 주식만 빼고 모두 사야합니다. 왜냐하면 꾸준히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 투자리스크를 최대한으로 줄여야 하기 때문이죠. 액티브한 매니저가 활용하는 일반적인 투자지표를 꼼꼼히 참고합니다. 그리곤 시가총액이 작은 종목들 위주로 밸류에이션이 좋지 못한 상장사를 제외시키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어요."
많은 종목을 담는 펀드의 매니저답게 다음달 상장을 앞둔 삼성생명에 대한 생각도 덧붙였다. 박 팀장은 삼성생명을 편입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나설 요량이다. 지난 3월17일 상장된 대한생명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대처했지만 삼성생명은 다르다는 입장이다.
"삼성생명이 5월에 상장되면 6월께 코스피200 지수로 편입은 확실할 겁니다. 만약 가격이 비싸지 않고 적당한 수준이라면 기업공개(IPO) 단계부터 적극 참여할 생각입니다. 수급부터 미리 조사해서 시장이 예상한 가격보다 쌀 때에는 주식형펀드 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매입할 생각도 갖고 있어요."
박 팀장은 이처럼 좋은 종목 담기에는 적극적이다. 그만큼 높은 수익률로 유혹(?)하는 종목들을 편입할 것도 같다. 그렇지만 그는 '변동성이 큰 종목을 편입해야는지를 결정하는 일'이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펀드의 성격상 지수를 복제해야 합니다. 그러니 변동성이 큰 종목들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사야할 때도 있습니다. 최근 워크아웃(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작업)이 진행된 금호그룹이 대표적이죠. 이런 종목들을 펀드에서 빼면 '추적오차'가 발생해 제대로 수익률을 예측하기 어려워집니다. 어쩔 수 없이 편입해야 할 때는 고민됩니다."
인덱스펀드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한국거래소(KRX)가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코스피200 지수를 관리해야 한다는 쓴소리도 해댔다. 최근 코스닥 시장에서 시가총액 20위권이었던 네오세미테크가 퇴출위기를 맞았다. 이로인해 일부 상장지수펀드(ETF)들이 타격을 입었는데, 문제는 이러한 ETF들이 추종하는 지수라는 것이다. 지수를 관리하는 곳에서 기업들을 제대로 선별해야만 펀드 투자자들도 손실이 적어진다는 얘기다.
코스피 지수가 1700선을 넘으면서 국내주식형펀드는 대량 환매사태를 맞았다. 그럼에도 박 팀장은 평소와 다름이 없다. 그가 운용하는 펀드는 자금의 큰 유출입 없기 때문이다. 교보파워인덱스펀드는 워낙 덩치도 큰 데다 장기투자자층이 주를 이루고 있어 자금흐름에 부침은 없는 편이다. 운용만으로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펀드매니저에게 '환매'의 위협이 없다는 것은 복(福)이나 다름없다.
"저는 다른 펀드매니저와 같이 특별한 운용철학이나 목표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펀드는 제가 운용사에 와서 처음으로 만든 펀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이 펀드를 대한민국 최고의 펀드로 키우고 싶어요. 이것이 제 마지막 꿈입니다."
국내 펀드매니저가 한 개의 펀드를 계속 운용하는 평균기간은 길지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09년 8월말까지 자산운용사가 운용하고 있거나 운용했던 펀드 수 4237개 중에서 담당 펀드매니저가 변경된 횟수는 8488번인 것으로 집계됐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돈을 운용하는 담당 펀드매니저가 평균 두차례 이상 바뀐셈이다.
이렇듯 철새 펀드매니저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도 박팀장은 부모가 자식을 버릴 수 없듯이 운용하는 펀드를 떠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소박한 바람이 신선하게 들리는 까닭은 왜일까.
한경닷컴 글=김하나·김효진 기자 hana@
사진= 김하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