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특허청장이 미국 특허청장을 만나기 어려웠다. 미국 특허청장으로선 한국의 특허청장과 할 얘기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전통적 특허 3국인 미국 유럽연합(EU) 일본에 더해 중국,그리고 한국의 특허청장이 5자 회동을 하고 있다. 전 세계 특허출원 5개 가운데 4개는 이들 지역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특허 G5'라고 할 만하다.

중국의 부상은 거대한 시장 하나만으로도 당연해 보이지만 좁은 국내시장 및 개방경제로 특징되는 한국의 변화는 한마디로 극적이다. 생존 차원에서 특허에 매달리다시피한 결과 2008년 특허출원건수와 국제특허출원건수에서 각각 세계 4위로 부상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 다른 모습도 있다. 여전히 기술무역수지 적자국이고,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대표기업들은 해외 특허괴물의 주된 타깃이 되고 있다. 게다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불리는 녹색분야 등에서는 '추격자'에 불과하다.

최근 한국공학한림원은 지식재산으로 새로운 국부를 창출하자는 이른바 '新국부론'을 들고 나왔다. 공학한림원이 제안한 17가지 전략 가운데 언론에서는 특허침해소송의 특허법원 집중,변리사에게 특허침해소송 대리권 부여 등 주로 사법제도 개혁에 주목했지만,정작 중요한 과제는 따로 있다. 기업과 대학,소위 산 · 학 간 지식재산권에 대한 소유권 배분의 합리화 요구가 그것이다.

2년 전 서남표 KAIST 총장은 기업과의 연구계약 시 기업이 연구결과물인 특허 등을 일방적으로 가져가는 관행을 깨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앞으로는 특허 등을 KAIST가 단독소유하고 기업에는 전용 또는 통상실시권을 주겠다는 얘기였다. 미국 등 선진 대학들의 관행을 도입하겠다는 것이었지만,그 뒤 들려온 소문에 따르면 KAIST의 기업연구 수주가 뚝 떨어졌다고 한다.

이와 관련,대학은 지식(대학)과 비용(기업)을 공동 투자한 것으로 생각하고,기업은 연구비를 연구대가,다시 말해 대학의 연구를 구매한 것으로 인식하면서 권리주장의 차이가 생긴다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국내 기업이 미국 대학과 연구계약을 할 때는 미국 대학의 지식재산권 기준을 따르는 것을 보면 인식의 차이 탓으로만 돌리기도 어렵다. 이런 이중적 잣대의 적용은 기업, 특히 대기업과 국내 대학이 '갑'과 '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 맞을 성 싶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게임이론으로 보면 그런 조건에서 대학은 알맹이 있는 연구결과를 내놓을 리 없다. 오히려 껍데기만 제공하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의 유혹을 키워, 산 · 학 간 불신을 초래할 뿐이다. 결국 기업도, 대학도 다 손해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업 내부보다 외부에 훨씬 더 많은 지식과 아이디어가 있다는 전제에서 나온 개념이다. 여기서 외부는 대학일 수도 있고, 개인 또는 창업기업일 수도 있다. 서구는 창의적이고 우리는 창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완전한 편견에 불과하다. 소유권 배분 등 동기 부여만 확실하면 지식과 아이디어의 대(大)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국내 대표 기업 CE0들과 대학 총장들이 지식재산권의 소유권 배분에 대한 공동선언문이라도 발표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질지 모른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