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패스트 트랙(신속지원)' 등 오는 6월 만료되는 중소기업 비상대책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을 계획이다. 경기가 어느 정도 살아나고 있는 만큼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살아날 기업은 지원해주고,정리할 기업은 솎아 내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에 따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중소 건설 · 조선업체를 비롯한 한계기업들은 또 한번 고비를 맞을 전망이다. 일부 중소기업이 퇴출되면 은행들의 피해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겉으론 일부 기업 퇴출에 따른 영향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내심으론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정부,비상대책 종료 방침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7일 "2008년 하반기부터 순차적으로 실시했던 각종 중소기업 비상대책이 6월 만료된다"며 "대책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고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한계기업의 퇴출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제가 위기국면에서 탈출한 만큼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심사도 정상상태로 환원해 솎아낼 기업은 솎아낸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오는 6월 만료되는 비상대책 중 대표적인 것은 '중소기업에 대한 패스트 트랙'이다. 정부와 채권단은 2008년 10월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소기업(건설 및 조선업체는 모든 기업)을 네 등급으로 분류했다. 신용평가 후 살릴 기업으로 평가된 기업(A,B 등급)에 대해선 필요한 자금을 즉시 지원했다. C등급은 워크아웃으로,D등급은 퇴출로 정리하기로 했다. 패스트 트랙이 종료되면 A,B등급으로 분류돼 필요자금을 지원받았던 기업이라도 대출만기가 연장된다는 보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6월 말까지 일괄 연장하고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의 보증비율을 상향 조정한 것도 7월부터는 85%로 원상회복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7월부터 대출 만기를 맞는 중소기업들은 신용도와 담보 여력에 따라 연장 여부를 결정받게 됐다.

채권단 자율협약인 '건설사 대주단 협약'은 8월 만료된다. 채권단은 6,7월께 협약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지만,비상대책이 대부분 종료되는 만큼 대주단 협약도 8월 말로 끝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최근 남양건설과 성원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는데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구조조정 속도가 너무 빠르면 문제가 되겠지만 기술적으로 소프트랜딩(연착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건설 · 조선업체 처리 위한 아이디어 속출

채권은행들도 그동안 자본 확충을 통해 구조조정에 대한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한계기업을 정리해도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의 한 여신담당 임원은 "작년에는 중소기업 대출은 무조건 100% 만기를 연장해줬는데 올 하반기부터는 신용 평가에 따라 대출금의 만기 연장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한꺼번에 대출을 회수하는 것은 아니고 여건에 따라 20%만 우선 상환토록 하는 등 단계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들은 겉으론 이렇게 밝히고 있지만,내심으론 건설과 조선업체 부실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건설 업종에서는 주택 전문 중소건설사와 지방 건설사들이 문제라고 은행들은 보고 있다. 지방엔 미분양 물량이 쌓여 있는 데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것 같지 않아 부실과 연체율 상승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조선 업종과 관련해서는,중소 조선사들의 과잉설비를 해소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다. '중소 조선사 지주회사'와 '조합형 펀드'를 만들자는 것이 대표적이다. 문제 있는 중소 조선사를 모아 지주회사를 만든 뒤,지주회사의 결정으로 과잉 설비 문제를 조정하자는 게 지주회사 방식의 골자다. 조합형 펀드는 문제 있는 중소 조선사들이 조합을 만들어 수주물량을 배분하고 건조 후 수익까지 나누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